Monday, November 16, 2015

가정교회의 예수영접

 예수영접모임은 가정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교회입문과정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믿고 그 분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는 고백을 예수영접모임에서 하게 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에 근거합니다.
‘영접하다’의 헬라어는 ’람바노 λαμβάνω’ 로 붙잡고 사용하기 위해 취하는 것입니다. ’믿는다’의 헬라어는 ’피스트유오 πιστεύω ’로 수긍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모든 사람이 압니다. 그렇지만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 편에서 볼 때 영접은 예수님을 믿기로 생각을 정하고 그 분을 따르기로 결단하여 행동하는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중심에 자리잡으시고 주인 되시고 성령님께서 활동하십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불신자의 영접은 하나님이 택하신 영혼이 돌아오는 오랜 기다림의 끝이 됩니다.
복음의 능력은 영접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있지만 복음의 능력은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캠퍼스에서 지나가던 학생들을 세워놓고 4영리를 설명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권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길거리를 걷는 현대인들에게 같은 전도방법을 시도하지만 현대인들은 시간을 내주지 않고 마음을 쉽게 열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사탄은 개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과학문화를 발전시켜서 다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인성, 영성 문화를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믿은 성도의 신앙과 복음의 능력이 불신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겁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행하신 제자양육의 방법이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을 압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과 3년간 함께 먹고 자고 동거하면서 전도하고, 제자들을 양육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초청에 반응하여 영접했고 예수님의 인성을 보고 배웠으며 예수님의 영성을 쫓아 기도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이 방법을 현대과학문화를 악용하여 저지하려고 합니다. 또 사탄은 예수님이 성공한 사람이냐고 반문하며 불신자들을 유혹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순교당하고 핍박당하고 싶으냐고 도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성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축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땅의 신분이 축복을 받은 하늘 가문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은 애찬을 통해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십자가 구원의 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성도가 함께 모여 애찬을 나누며  삶을 나누며 그리스도인의 축복의 삶을 이룩하자는 것이 가정교회의 목장입니다. 불신자들을 영접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목장의 나눔을 통해 일어납니다. 영접이 필요한 영혼을 목장으로 초대하는 것이 전도의 시작이고 예수영접모임이 제자양육의 첫걸음입니다. -CSJ-


Monday, November 9, 2015

가정교회의 회원교인 2

 가정교회는 회원교인, 등록교인, 출석교인, 18세 이하인 세례교인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석교인은 교인등록 없이 목장모임에는 출석하지 않지만 주일예배 즉 주일목장연합예배에는 출석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등록교인은 교인등록인 했지만 목장에는 출석하지 않고 주일예배를 참석하는 분을 가리킵니다. 가정교회의 회원교인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중 앞에서 세례받고 목장모임에 참석하며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고 삶공부 제자양육을 받기로 결정하신 분들을 가리킵니다. 회원교인이 가정교회 교인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게 되고 목자, 목녀, 부서장, 카운실 멤버, 교회 직분자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회원교인은 가정교회 목장의 시작입니다. 회원교인이 목장의 기초를 이루고 그 위에 VIP 영혼들이 초청되어 목장에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회원교인이 되기 위해 독자적인 과정을 개설했습니다. ‘가정교회&예수영접’ 2주 과정을 담임목사와 함께 공부하고 확인한 후 삶공부의 첫 번째 과정인 ‘생명의 삶’ 제자훈련을 신청하면 카운실(Council:교인대표회의)에서 회원교인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논의한 후 공식적으로 회원교인이 되었음을 발표합니다. 회원교인이 결정되면 주일예배 시간에 간증을 하게 되고 회원 교인증을 발급받게 됩니다.   
가정교회의 회원교인은 목장활동을 통해 구원이 필요한 영혼들, 죽어가는 영혼들, 사탄의 권세에 묶인 영혼들, 교회생활을 하지 않는 가나안 교인들, 구원받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교회의 한 몸 목장으로 초청하여 인도하는 의무를 부여 받게 되는 겁니다. 회원교인이 목장의 뿌리가 됩니다. 회원교인들의 영혼을 향한 열심과 헌신을 통해 VIP영혼들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비로서 회원교인들의 손길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물론 가정교회의 회원교인은 많은 의무를 지게 됩니다. 교회살림을 위해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생활을 하고, 교회를 관리 유지하고, 성도의 교제를 위해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고, 더 많은 이들을 섬겨야 하며, 교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더 많이 기도하기 위해 새벽기도를 시작해야 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온전한 신앙으로 성숙하기 위해 신앙서적을 더 열심히 많이 읽고, 계속 이어지는 삶공부 제자훈련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업을 유지하고 번성시켜야 하는 세상의 일과 가정을 돌보는 일도 해내야 합니다.
하지만 회원교인의 권리는 의외로 작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로서 회원교인이 되라고 권하는 것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회원교인의 헌신이 바로 축복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에스겔 47장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영광을 믿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게 되고, 되살아나고, 많아지며, 시들지 아니하고,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는 축복을 믿습니다. 성도의 축복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될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축복의 근원입니다. 그가 바로 생명수 입니다.   -CSJ-



Monday, November 2, 2015

가정교회의 회원교인

 가정교회House Church는 21세기 교회목회를 이끌어갈 대표적 목회방법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19, 20세기 교회가 교회성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모이게 하여 영혼구원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교회는 대형화되었고 개척된 교회는 어렵지 않게 안정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신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원심력의 교회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제도화, 조직화, 기계화 되는 경향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현대사회를 지배하면서 절대적 가치와 진리의 영향력이 감소하게 되고 해체주의가 형성되면서 인간관계가 개별화되는 현상이 일어나자 대형화되고 조직화된 교회구조는 21세기 현대인을 신앙으로 품고 가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직보다는 개인적 차원이 강조된 ‘공동체’가 필요하게 되고 교회도 제도적 조직에서 나눔의 공동체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사회에서는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진리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체험되어야 받아들여지는 성향이 발생합니다. 자아 self가 강조되면서 나와 관계없는 진리는 진리로서의 가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와 관계 있는 공동체, 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격의 만남을 강조하게 됩니다.
이제 현대인은 진리의 말씀으로 성경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믿는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간증함으로써 진리의 말씀이 어떻게 나의 생활과 연결되는지 설득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21세 현대인을 위해 탄생한 교회목회구조입니다.
가정교회는 현대인의 영혼구원을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혼자만의 문화생활에 빠져서 부러울 것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현대인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복음을 알리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에서 복음을 소개하는 방법은 삶의 간증과 초청입니다. 처음부터 사영리를 소개하거나 십자가와 부활의 원리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 먼저 믿은 내가 경험한 신앙의 얘기들을 나눕니다. 그리고 저녁에 초대합니다. 가정교회는 복음이 필요한 영혼을 VIP라고 호칭합니다. 복음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정교회는 교회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건물이나 조직이나 프로그램은 가정교회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가정교회는 한 영혼에게 복음을 어떻게 소개하고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교회가 희망이라고 믿는다면 VIP가 교회 안에 머무르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목장모임을 통해 계속해서 VIP를 찾아 초대합니다. 그리고 예수영접을 통해 복음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에 오라고 권면합니다. 가정교회의 회원교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VIP를 초대하기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숙한 교인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저녁초대가 아니라 한 영혼을 생명으로 이끄는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목장모임을 섬기면서 영혼을 전도하는 당신이 가정교회의 회원교인입니다. -CSJ-



Monday, October 26, 2015

믿음의 친구, 동역자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님을 만난 후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에 빠졌다. 예수님을 만난 후 옛 친구들은 떠나고 정신적으로 혼란 속에 빠져있을 사울을 처음 찾아온 믿음의 사람은 아나니아였다.
아나니아는 핍박을 피하기 위해 도망 나와 살던 경건하며 칭찬 듣는 유대인이었다(행 22:12). 뿐만 아니라 그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기도하는 능력의 제자였다. 준비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부르실 때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응답한 모습은 늘 기도로 준비된 사명자의 태도이다. 그리고 치유하는 능력의 종이였고 사울에게 안수할 때 사울은 성령의 충만하게 되었다.
우리도 경건과 기도의 습관이 필요하다. 경건으로 스스로를 연단하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생활에 적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아서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지 깨달아야 하며 매 순간 인도하심을 발견하는 민감함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는 사울이 자신과 같은 제자들을 잡아 박해하는 유대인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요청에 기꺼이 순종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울을 어떻게 사용하실지를 듣게 된다. 사울은 특별한 고난을 받을 자로 임금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자로 택함 받았음을 알려주신다. 주님의 계획을 들은 아나니아는 직가로 가서 사울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 믿는 성도를 핍박하던 사울을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 되게 했다. 아나니아는 그 이후 성경에서 사라진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아나니아를 ‘기독교 교회의 잊혀진 영웅들 중 하나’라고 지칭한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고 교회를 세우셔서 서로 기댈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서로 기대고 맞댐으로 사탄의 공격과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셨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겠지만 교회를 떠나서는 긴 구원의 여정을 마치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며 긴 구원의 여정을 지나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친구와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 몸 이룬 교회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믿고 영혼구원을 위해 정진하는 교회의 친구, 동역자가 모일 때 비로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게 된다.
교회는 계속해서 믿음의 친구, 동역자를 제자로 세워야 한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VIP를 초대하는 초청사역이 되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새로운 친구와 동역자가 끊임없이 교회의 몸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울과 같은 처참한 처지에 있는 영혼에게 다가가 함께 해주고 신앙으로 이끌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 누군가를 향해서 주님은 바로 내가 그에게로 가라고 요구하신다.   -CSJ-



Monday, October 19, 2015

성령의 이끄심

가정교회세미나를 이끄는 휴스턴 서울교회를 다녀오면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가 참 행복한 교회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가정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선택과 갈등의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에서 제시되지 않은 상황의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게 좋을까요? 성령의 이끌림 안에서 담임목사의 목회철학과 평신도 리더들의 헌신이 교회사역을 이끄는 열쇠인 듯 합니다.
성경적 원리와 합리적 사고에 따라서 제시된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 평신도 리더들에게 전달되면 평신도 리더들은 그 제안을 곱씹고 되새겨서 사역으로 연결합니다. 반대로 평신도 리더들이 발제한 사역은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으로 검토되고 확인되면 진행됩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는 쌍방 신뢰의 관계를 통해 사역을 전개하는 방법을 찾은 듯 합니다.
가정교회의 세 축은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소그룹 목장, 제자훈련 삶공부, 목장연합 주일예배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이 세 축의 연결을 성령께서 담당하고 표면적으로는 담임목사와 평신도와의 협력관계가 중요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위임하고 헌신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 관계도 성령께서 이끕니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거나 이끄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이끌 때 진정한 가정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고전 2:13). 가정교회의 조직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교회의 모습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세워집니다. 가정교회의 사역을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만 이끌 수 없습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가정교회의 모든 성도는 성령의 이끌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시각으로 가정교회를 보면 한계에 부딪히고 말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가정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보게 합니다.
간혹 성령의 이끌림을 오해하여 비인격적이고 신비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합니다. 성령의 이끌림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으로 일어나지만 우리의 이성과 전혀 관계 없이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을 딛고 초월해서 성령께서 역사합니다.
베드로는 기이한 환상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보며 의심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이방인에게 임하실 성령의 역사를 나중에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또 빌립 집사를 이끌어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고 세례를 베풀게 합니다. 베드로를 이끌고 빌립을 이끄신 성령님은 바로 옥토 같은 마음을 가진 VIP 영혼을 생명으로 이끌고 제자로 이끌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초자연적인 방법과 과정은 이해할 수 없지만 신뢰하고 순종하면 성경적이고 이성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성령님의 이끄심을 이해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영혼들을 살리며 세상의 빛이 됩니다. 성령님은 현대에도 초자연적으로 활동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고 이루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이 우리의 삶과 교회를 이끌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공동체가 됩니다.  -CSJ-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

삶의 항해를 시작하면서 인생은 늘 불안한 여정을 맞는다. 앞날을 예측해 보지만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지만 의식주가 해결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로 나아가는 출발은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고 하신다.
하나님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이것은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닌 것을 우리는 안다.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서둘러 준비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맡기는 마음가짐을 하나님은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정직한 마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려는 중심을 기대하신다. 
‘로봇다리 세진이’로 통하는 세진이의 간증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수 있는 지에 대한 지혜를 준다. 세진이는 두 다리가 없는 장애자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시험과정을 거쳐 대학의 스포츠경영학과에 입학하여 수업을 받고 있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거부하고 정상인과 경쟁하여 자기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일반선수들이 참가하는 브라질 올림픽에 나가려고 준비 중이다. 장애인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세진이는 처음부터 이 꿈을 목표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피노키오라고 놀리는 것이 싫어서 걸음을 연습한 후 걷게 되었고 강한 아들을 기대하는 엄마가 물속에 집어넣자 세진이는 살기 위해서 수영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안 해요, 못해요, 싫어요’라는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꿀 수 있었다. ‘병신, 재수없어, 넌 못할 거야’라는 조소에서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이야, 넌 할 수 있어’라는 격려로 사람들은 변해갔다. 하나님은 지금의 역경을 이겨낼 때 좀 더 높은 목표를 기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이끄신다.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한 발을 내디딜 때 걷게 되고 뛰게도 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렇게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한다면 현재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나고 있음을 자각하고 확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평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신다(고전10:13).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현재 주어진 어려움을 이겨낼 때 한 단계 우리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을 찾는 우리를 만나주신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모든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CSJ-


Sunday, October 4, 2015

예배자가 있는 곳

현대교회의 예배는 마치 공연과 같다. 화려한 조명 아래 있는 무대가 강대상이 되고 프로그램을 맡은 인기 MC 역할은 설교자가 하는 것 같다.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예배는 드라마처럼 진행되고 잘 연습된 배우들로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예배순서도 준비된 사람들로 채워진다. 형식화되고 문화화된 현대예배가 주는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곳에서도 예배자를 찾으신다. 관객으로 있지 않고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는 영혼을 만나주시고 소통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곳에 확장된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고 숨겨진 공간은 없다. 어리석고 교만한 인간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일 때 영국의 윌리엄 템플 감독은 전쟁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다른 어떤 때보다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위로하였다. 예배자가 된 성도는 예배에 거하고 예배로 살고 예배에 의해 움직인다. 예배는 죄에 억눌리고 죄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살린다.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그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이 세상 가운데 실현되는 역사가 예배를 통해서 일어난다. 교회가 좋은 이유는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하나되어 예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과 진리로 예배할 자를 찾으신다. 참 예배자를 찾으신다. 거짓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의 예배이다. 설교자가 하나님이 되고 교회의 프로그램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버린 죽은 교회이다. 참 예배는 성령의 붙들림 받은 성도들이 살아있는 영으로 운동력 있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예배이다. 믿음이 참 예배자를 예배로 이끈다. 그 예배자가 있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되고 성막이 되고 성전이 된다.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이임을 믿고 모든 것을 의탁하며 나아간다.
현대교회는 죽은 영혼을 찾아내고 영생을 찾는 구도자를 예배로 이끌며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교회의 몸이 되게 하고 이들을 성령과 말씀으로 양육하여 제자가 되게 하고 이들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예배가 세워지도록 예배자를 세상에 파송해야 한다. 우리교회는 이 일을 위해 세워졌다. 하버드 대학교의 신학자 하비콕스는 세가지 교회의 유형을 자유와 정의를 지향하는 출애굽기 교회, 감사와 축제가 있는 시편의 교회, 새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하는 계시록의 교회로 설명한다.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그 하늘나라가 현재인 것처럼 살아가는 신앙을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한다. 우리의 교회도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지워져 가는 미완성의 건축물로 이 곳에 존재한다. 교회의 공동체가 예배자로 채워지고 예배자를 세상에 흘려 보낼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참여하게 된다. 정직한 예배자를 통해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고 사랑의 예배자를 통해 이 땅에 자유와 평화가 실현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예배자들을 통해 삶은 감사가 넘치고 예배는 축제가 된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