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2, 2017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교회가 연약할 때 낙담 속에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미래의 소망을 보고 교회의 부흥을 기대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이루지만 여전히 사탄의 공중권세 아래에 있는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교회의 소망은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온 성도가 깨어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되어 믿음을 지키며,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사탄을 결박하는 성령의 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각 성도가 한 몸의 지체로 세워져 각자의 소명과 은사를 따라 존재할 때 교회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성도는 자기의 소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각자의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소명이 성도를 강하게 하고 활기차게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지치고 낙담하고 실패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되새기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소명에서 나옵니다. 날마다 매 순간 나의 소명을 반추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게 있는 은사를 개발하여 더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은사는 나를 유능한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이끕니다. 뿐만 아니라 은사를 통해 공동체를 섬겨 부요하게 합니다.
사탄의 궤계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남겨주신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는 용기가 교회에 필요합니다. 온 성도가 성령으로 하나되어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닮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로 복음을 증거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소명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상처받고 혼란 속에 있는 영혼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회복시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게 하는 능력의 예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 공동체가 섬기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필요를 채워가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진정한 예배가 숨 쉬는 교회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믿음의 기도가 쌓이는 교회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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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성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과 헌신이 기쁨이 되어 열매 맺는 아름다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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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마음 닮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빛 되신 주님 전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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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 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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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CSJ-


Monday, January 23, 2017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선교역사에서 19세기를 위대한 선교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 위대한 선교의 불꽃은 18세기 경건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경건주의 운동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 개념의 경건 소모임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안의 작은 교회’라는 말은 독일 루터교회의 목사로 평생을 목회한 필립 야콥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고, 슈페너는 교회 갱신을 꿈꾸면서 현재의 교회가 비록 타락했어도 성령의 역사로 경건한 신약교회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슈패너는 루터가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에 근거하여 목회자와 평신도가 직무에 차이는 있어도 모두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제사장이 되어 자신이나 남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과 이웃을 위해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찾았습니다. “(표준새번역)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작은 교회는 현대교회의 소그룹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특별히 가정교회는 교회 안의 교회로서 통전적 선교를 실천하는 선교적 소그룹입니다. 작은 교회를 목장으로 구성하고 영적 제사장으로 세워진 리더를 목자’로 임명하여 구성원인 목원을 신앙적으로 양육하도록 합니다.  목자는 작은 교회로서 목장의 영적 제사장이지만 교회의 영적 제사장인 목회자의 영적 리더십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정교회는 목회자의 영적 리더십을 교회구조의 중심에 놓고 목장과 협력하여 목원들을 신앙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합니다. 목장에서 설교를 통해 받은 은혜와 도전을 나누고 매일 삶 속에서 겪는 삶의 얘기를 대화합니다.
가정교회는 작은 교회인 목장에서 이루어집니다. 비신자는 바로 교회의 행사와 예배에 참석하기 보다는 먼저 목장에 초대되어 성도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갖게 됩니다. 먼저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목원들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신앙을 삶에 적용하는지를 듣게 됩니다. 같은 인생의 문제를 겪지만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의 예배에 초청됩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면서 목회자가 인도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임에 가게 되고 침례를 받게 됩니다. 목장은 국외 선교사와 연결되어 기도와 재정적인 후원을 하면서 선교사 사역과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작은 교회로서 활동하는 목장을 통해 통전적 선교가 이루어지면서 지역사회의 비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에 정착하게 되며, 파송된 선교사를 재정적으로, 기도로 또는 단기선교를 통해 후원하게 됩니다. 지역사회의 영혼과 국외지역에 있는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퉁전적 선교를 실천하는 작은 교회로서 목장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우리는 가정교회의 목장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큰 그림 속에서 소망을 품고 하나님 나라 세우는 사역에 열심을 내기 바랍니다. -CSJ-


Monday, January 16, 2017

전도하는 신앙공동체

한 해를 돌아보고 2017년도를 계획하면서 우리 교회가 소홀히 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전도’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흔히 선교는 국외로 복음을, 전도는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지난 해 우리는 각 목장이 선교헌금을 모아 선교지에 보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오지에서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도록 작은 물질적 후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역복음화를 위해서 특별히 했던 사역이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역복음화를 위해 우리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전도 사역이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역 두 가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는 지역에 한글과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지인을 초대해서 관계를 갖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K-Pop, K-Drama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교회에서 영어권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소개하면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도를 실천하여 복음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정신이 정착되면서 나타나는 건전한 기독교 문화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한글과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한민족의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섬김의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년 설날 즈음에 개최되는 맥알렌 IMAS 박물관의 설날 페스티벌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놀이를 소개하면서 교회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전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문화를 통해 교회를 경험하고 예수님의 사람과 섬김에 노출되면 분명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 예로 페루에서 선교문화사역을 하고 있는 방도호 목사님의 한국문화원 사역입니다. 교회가 한국문화원을 세워 한글을 가르치고 부채춤, 태권도 같은 한국 전통문화를 가르치고 김치, 떡 등을 만들어 시식하면서 한국 음식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건강한 문화를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겸손의 정신을 실천하여 복음의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둘째로 기대할 수 있는 전도사역은 찬양팀 입니다. K-Pop의 열풍은 한국의 찬양문화 즉 K-CCM 에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는 말씀과 성령의 조화가 찬양으로 표현되어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한국교회가 누리고 있는 성가찬양, 복음성가, CCM 등을 현지인들에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인이 누리고 있는 신앙의 문화를 전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미국과 호주에서 일어난 찬양과 경배의 물결이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찬양은 문화를 초월해서 잠자는 교회를 일깨우고 교회를 연합시키고 악한 영을 대적하는 힘을 갖습니다. 가톨릭 문화에 젖어 종교화된 멕시코 사람들에게 또 오순절의 성령체험에 크게 의존하여 말씀의 기초가 약한 남미의 교회들에게 새로운 기독문화의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성령의 충만함과 건전한 신학 위에 형성된 말씀의 능력을 찬양에 실어 무능력한 교회들을 깨우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복음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CSJ-


Monday, January 9, 2017

다시 신약교회의 원리로

지난 주간 신년을 맞아 세겹줄 새벽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게 하라’라는 주제로 신앙서적을 함께 읽으면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세겹줄 기도회가 계속됩니다. 세분씩 중보기도의 짝을 정하시고 이 기간 동안에 어떻게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는지 체험하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함께 하는 기도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시작입니다.
가정교회는 신약교회의 회복을 위해 정진합니다. 신약교회가 보여준 복음의 능력을 본받기 위해 가정교회 사역이 시작되었고 많은 교회들이 신약교회의 회복을 위해 동참하고 있습니다. 신약교회 회복운동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가 어떻게 이 땅에 존재해야 되는가를 되새기는 운동입니다. 어찌하든지 한 영혼, 한 가정이라도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도록 이끄는 운동입니다. 신약교회 회복운동은 가정교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형식으로 다른 모양으로 많은 교단과 교회가 동일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Church of Christ 즉 그리스도의 교회는 소위 ‘환원운동’을 전개합니다. 신약교회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또 Calvary Church 즉 갈보리 교회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모토아래 신약교회 회복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가 지향하는 신약교회의 정신은 목장에 모여 식사를 하고 삶을 나누는 모임을 통해 비신자들을 전도하는 선교적 교회로 세워지는 겁니다. 그 바탕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나서는 선한 목자의 마음이고,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영혼을 생명의 복음을 통해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성경 전체에 녹아있어 말씀을 배워 깨닫고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실천할 때 체험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사역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고 이 영광의 사역은 영광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교회의 지체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온전히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역해야 합니다. 이 사역을 위해 교회는 성령충만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며 정직과 공의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사탄은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여 교회의 본질과 목장의 본질을 왜곡합니다.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제와 친교만을 위해 목장을 운영하게 하고 사람들을 위한 교회로 만듭니다. 이 땅에 파수꾼으로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할 성도들을 썩어질 복에 취해 사는 술 취한 성도로 바꿔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절제하고 거룩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청빈한 생활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물질의 축복을 자랑하고 경건의 모양을 뽐내며 금식과 헌금생활에 대해 거리에 나가 나팔 붑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 회 칠한 무덤이라고 저주하시면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성령충만 하지 못할 때 이와 같은 다른 복음의 교회가 만들어집니다.  -CSJ-


Monday, January 2, 2017

지역목자모임을 다녀와서

지난 주간 남침례교회 지방회와 지역목자모임을 다녀오면서 오스틴에서 킬린을 지나 달라스까지 일정을 마쳤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에 가정교회 사역을 돌아보며 교회사역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다른 목사님들의 생각과 비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달라스의 예닮교회와 오스틴의 늘푸른 교회는 비슷한 시기에 가정교회를 시작해서 현재 27개 정도의 목장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지역적인 특성에 맞게 목장이 구성되어 효율적으로 목장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 교회 모두 소수의 목장으로 가정교회사역을 시작했고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15년 정도 지나자 부흥을 경험했다는 겁니다. 또한 부흥하기 위해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각 목장이 잘 세워지기를 기대하면서 사역에 임했더니 어느 순간에 부흥되었다는 목사님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위기의 순간을 겪고 어려운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흥하는 교회는 그 순간을 하나님의 음성을 쫓아 기도하며 지났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의탁하는 것이 공동체의 시련을 이겨내는 비결이었습니다.    \
공동체가 문제를 만났을 때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또한 중요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일반 사회기관이 아니라 영적 공동체입니다. 사회기관은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이 필요하겠지만 교회는 신본주의와 하나님의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오는 원리를 어떻게 교회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정교회 사역은 담임목사의 영적인 권위가 세워지고 평신도 목자의 리더십과 섬김이 작동할 때 부흥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정교회는 담임목사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도록 배려합니다. 매일 3시간 기도와 매주 30시간 설교준비를 할 수 있도록 담임목사의 영적 사역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성도를 돌보는 목양사역과 교회사역을 평신도 리더인 목자가 하도록 합니다. 평신도 리더인 목자에게 목양사역은 목원들을 돌보는 사역으로 심방하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고 상담할 수 있는 목양권을 부여 받습니다. 더욱이 가정예배나 돌잔치, 생일잔치 등에서 목자는 설교할 수 있도록 권한아 부여됩니다.
담임목사는 목자들에게 목양권을 부여하는 대신 목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목자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목자와 목녀는 공예배의 말씀 선포에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지만 담임목사의 중보와 섬김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이들 교회에서는 교회의 치리권이 교회헌법에 근거해서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자의 나태함과 무관심을 질책하고 목자의 소명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평신도 리더인 목자는 생업과 교회사역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사역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구원에 대한 비전 없이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들 교회에서 담임목사는 목자들의 영적 아버지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목자들이 담임목사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영적 아버지가 되어서 목장사역의 잘한 일과 잘 못한 일에 대해 평가하고 점검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는 모든 성도의 목자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면서 평신도 리더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CSJ-


회원교인이 된다는 것

현대사회는 세속화되면서 점점 탈종교화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반면에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 더 종교생활에 열심을 내는 현대인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불안감, 자연재해, 질병, 사건과 사고,  이별과 죽음 등 인간의 힘으로 예측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들 속에서 현대인들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지 노력합니다. 심지어 대안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뉴에이지, 요가, 뇌호흡 등에 심취해서 평안한 상태를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참된 평안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선포하는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설계하신 이는 하나님 자신이며 교회를 세우신 이는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예수님이고, 교회를 운영하는 이는 성령님입니다. 지역에 위치하면서 유형의 교회를 이루고 성도들이 교회의 실체를 이룹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세주로 고백하여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으로 하늘나라를 지향하지만 이 땅에서는 사회기관으로 존재합니다. 여느 기관과 마찬가지로 조직을 갖추고 등록을 받고 회원으로 인정하고 회원 중에서 리더를 세웁니다. 침례교회의 리더는 이원론적이기는 하지만 영적인 리더로서 목사가 있고 평신도 리더로서 안수집사(장로)가 있습니다. 목사는 청빙을 통해서 영적 리더로 세워지고, 안수집사는 회원들의 추대와 검증을 통해 세워집니다.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의미는 바른 리더를 세워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회원은 하나님께 시간과 재능과 헌금을 바치는 헌신을 통해 선교적 공동체를 유지해 가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됩니다.
교회도 사회기관으로서 일반 사회기관의 조직과 운영에서 요구되는 상식적인 행정방법을 도입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영적인 요소를 더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회원도 일반 기관의 회원과 동일한 상식적인 원칙을 지키되 그 위에 영적인 요소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는 일반회의진행에 필요한 상식적인 요구를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더해 기도와 말씀이 함께 더해져 회원다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결정될 수 있도록 모든 결정을 의탁해야 합니다. 일반 회의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즉 고성을 지르거나 몸싸움을 하거나 비난과 비방을 일삼는 일은 교회회의에서도 나타나면 안됩니다. 교회의 모든 행정과 행사는 사회기관보다 더 정직하고 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회를 이끌고 나아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현대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고 현실의 어려움을 말씀과 기도로 극복하는 신앙의 힘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기관입니다. 교회의 회원들은 이런 신앙의 힘을 자랑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비신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등록을 하고 회원교인이 될 수 있도록 목장에서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합니다. 목장에 편입이 되면 목장 그룹카톡에 등재하고 함께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중보하며 기도하면서 영적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안을 제공해야 합니다.  -CSJ-


Monday, December 19, 2016

사유화할 수 없는 목장사역

가정교회는 목장을 통해 예배사역과 선교사역이 이루어지는 교회목회의 한 형태입니다. 주일예배가 목장연합예배로 이루어집니다. 비신자 VIP를 전도하여 목장에 초청함으로써 지역선교사역이 이루어집니다. 가정교회는 지성과 감성, 영성으로 현대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통전적 목회방식입니다. 삶공부는 말씀을 공부하여 지성을 넓혀줍니다. 주말마다 모이는 목장모임은 삶의 나눔을 통해 각박한 현대생활에서 마음을 녹이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감성을 회복합니다. 주일의 목장연합예배는 경배와 찬양, 설교와 결단을 통해 영성을 세워갑니다. 목장, 삶공부, 주일예배의 세 축이 가정교회를 이룹니다.
가정교회의 위대한 점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리더십에 철저하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세 축 핵심에 담임목사의 영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담임목사의 독재를 위한 구조가 아닙니다. 담임목사는 철저하게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뜻을 쫓아가라고 세 축의 중심에 놓여있는 겁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담대하게 선포했던 의미와 상통합니다. 담임목사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지역교회에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담임목사의 리더십이 아니고, 재물로 사회적 지위로 득세한 몇몇 교인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리더십이 실천될 수 있도록 담임목사가 먼저 선포된 말씀에 완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교인들은 선포된 말씀을 담임목사의 생각으로 여기지 않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정교회는 성공적인 목회로 자리잡고 부흥의 감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정교회는 성장을 추구하지 않지만 영적인 부흥이 교회에 일어나고 그 역사를 통해 지역사회가 하나님 나라로 확장되기를 소원합니다.
한 해를 마치면서 목장사역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의 목장은 내 목장이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목장이었는가? 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한 마음으로 모이는 공동체였는가? 나의 꿈을 이루는 공동체였는가? 목장은 누구 한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을 치라고 맡겨주신 사역의 공간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내 양을 치라’고 부탁하신 그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순종입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순종했습니까? 아니면 이용했습니까? 목장에 모인다는 명목으로 나의 감정적 필요를 채우거나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가 좋아서 교회의 한 몸인 것을 잃어버리고 사모임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비신자 VIP를 초청한다는 구실로 정말 필요한 예배의 요소는 버리지 않았는지 목장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물어야 합니다. 목장은 교회의 지체입니다. 교회 안에 작은 교회입니다. 목장이 교회를 떠나서는 더 이상 목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교모임이지 예배모임이나 영혼을 생명으로 이끌기 위한 선교모임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목장이 예수님 원하시는 바른 목장이 되길 원합니다. 교회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목장이 모일 때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나는 말씀에 순종합니까? 원리를 이용합니까?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