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2, 2017

지역목자모임을 다녀와서

지난 주간 남침례교회 지방회와 지역목자모임을 다녀오면서 오스틴에서 킬린을 지나 달라스까지 일정을 마쳤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에 가정교회 사역을 돌아보며 교회사역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다른 목사님들의 생각과 비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달라스의 예닮교회와 오스틴의 늘푸른 교회는 비슷한 시기에 가정교회를 시작해서 현재 27개 정도의 목장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지역적인 특성에 맞게 목장이 구성되어 효율적으로 목장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 교회 모두 소수의 목장으로 가정교회사역을 시작했고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15년 정도 지나자 부흥을 경험했다는 겁니다. 또한 부흥하기 위해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각 목장이 잘 세워지기를 기대하면서 사역에 임했더니 어느 순간에 부흥되었다는 목사님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위기의 순간을 겪고 어려운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흥하는 교회는 그 순간을 하나님의 음성을 쫓아 기도하며 지났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의탁하는 것이 공동체의 시련을 이겨내는 비결이었습니다.    \
공동체가 문제를 만났을 때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또한 중요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일반 사회기관이 아니라 영적 공동체입니다. 사회기관은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이 필요하겠지만 교회는 신본주의와 하나님의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오는 원리를 어떻게 교회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정교회 사역은 담임목사의 영적인 권위가 세워지고 평신도 목자의 리더십과 섬김이 작동할 때 부흥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정교회는 담임목사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도록 배려합니다. 매일 3시간 기도와 매주 30시간 설교준비를 할 수 있도록 담임목사의 영적 사역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성도를 돌보는 목양사역과 교회사역을 평신도 리더인 목자가 하도록 합니다. 평신도 리더인 목자에게 목양사역은 목원들을 돌보는 사역으로 심방하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고 상담할 수 있는 목양권을 부여 받습니다. 더욱이 가정예배나 돌잔치, 생일잔치 등에서 목자는 설교할 수 있도록 권한아 부여됩니다.
담임목사는 목자들에게 목양권을 부여하는 대신 목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목자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목자와 목녀는 공예배의 말씀 선포에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지만 담임목사의 중보와 섬김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이들 교회에서는 교회의 치리권이 교회헌법에 근거해서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자의 나태함과 무관심을 질책하고 목자의 소명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평신도 리더인 목자는 생업과 교회사역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사역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구원에 대한 비전 없이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들 교회에서 담임목사는 목자들의 영적 아버지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목자들이 담임목사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영적 아버지가 되어서 목장사역의 잘한 일과 잘 못한 일에 대해 평가하고 점검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는 모든 성도의 목자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면서 평신도 리더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CSJ-


회원교인이 된다는 것

현대사회는 세속화되면서 점점 탈종교화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반면에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 더 종교생활에 열심을 내는 현대인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불안감, 자연재해, 질병, 사건과 사고,  이별과 죽음 등 인간의 힘으로 예측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들 속에서 현대인들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지 노력합니다. 심지어 대안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뉴에이지, 요가, 뇌호흡 등에 심취해서 평안한 상태를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참된 평안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선포하는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설계하신 이는 하나님 자신이며 교회를 세우신 이는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예수님이고, 교회를 운영하는 이는 성령님입니다. 지역에 위치하면서 유형의 교회를 이루고 성도들이 교회의 실체를 이룹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세주로 고백하여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으로 하늘나라를 지향하지만 이 땅에서는 사회기관으로 존재합니다. 여느 기관과 마찬가지로 조직을 갖추고 등록을 받고 회원으로 인정하고 회원 중에서 리더를 세웁니다. 침례교회의 리더는 이원론적이기는 하지만 영적인 리더로서 목사가 있고 평신도 리더로서 안수집사(장로)가 있습니다. 목사는 청빙을 통해서 영적 리더로 세워지고, 안수집사는 회원들의 추대와 검증을 통해 세워집니다.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의미는 바른 리더를 세워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회원은 하나님께 시간과 재능과 헌금을 바치는 헌신을 통해 선교적 공동체를 유지해 가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됩니다.
교회도 사회기관으로서 일반 사회기관의 조직과 운영에서 요구되는 상식적인 행정방법을 도입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영적인 요소를 더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회원도 일반 기관의 회원과 동일한 상식적인 원칙을 지키되 그 위에 영적인 요소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는 일반회의진행에 필요한 상식적인 요구를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더해 기도와 말씀이 함께 더해져 회원다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결정될 수 있도록 모든 결정을 의탁해야 합니다. 일반 회의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즉 고성을 지르거나 몸싸움을 하거나 비난과 비방을 일삼는 일은 교회회의에서도 나타나면 안됩니다. 교회의 모든 행정과 행사는 사회기관보다 더 정직하고 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회를 이끌고 나아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현대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고 현실의 어려움을 말씀과 기도로 극복하는 신앙의 힘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기관입니다. 교회의 회원들은 이런 신앙의 힘을 자랑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비신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등록을 하고 회원교인이 될 수 있도록 목장에서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합니다. 목장에 편입이 되면 목장 그룹카톡에 등재하고 함께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중보하며 기도하면서 영적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안을 제공해야 합니다.  -CSJ-


Monday, December 19, 2016

사유화할 수 없는 목장사역

가정교회는 목장을 통해 예배사역과 선교사역이 이루어지는 교회목회의 한 형태입니다. 주일예배가 목장연합예배로 이루어집니다. 비신자 VIP를 전도하여 목장에 초청함으로써 지역선교사역이 이루어집니다. 가정교회는 지성과 감성, 영성으로 현대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통전적 목회방식입니다. 삶공부는 말씀을 공부하여 지성을 넓혀줍니다. 주말마다 모이는 목장모임은 삶의 나눔을 통해 각박한 현대생활에서 마음을 녹이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감성을 회복합니다. 주일의 목장연합예배는 경배와 찬양, 설교와 결단을 통해 영성을 세워갑니다. 목장, 삶공부, 주일예배의 세 축이 가정교회를 이룹니다.
가정교회의 위대한 점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리더십에 철저하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세 축 핵심에 담임목사의 영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담임목사의 독재를 위한 구조가 아닙니다. 담임목사는 철저하게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뜻을 쫓아가라고 세 축의 중심에 놓여있는 겁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담대하게 선포했던 의미와 상통합니다. 담임목사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지역교회에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담임목사의 리더십이 아니고, 재물로 사회적 지위로 득세한 몇몇 교인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리더십이 실천될 수 있도록 담임목사가 먼저 선포된 말씀에 완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교인들은 선포된 말씀을 담임목사의 생각으로 여기지 않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정교회는 성공적인 목회로 자리잡고 부흥의 감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정교회는 성장을 추구하지 않지만 영적인 부흥이 교회에 일어나고 그 역사를 통해 지역사회가 하나님 나라로 확장되기를 소원합니다.
한 해를 마치면서 목장사역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의 목장은 내 목장이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목장이었는가? 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한 마음으로 모이는 공동체였는가? 나의 꿈을 이루는 공동체였는가? 목장은 누구 한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을 치라고 맡겨주신 사역의 공간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내 양을 치라’고 부탁하신 그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순종입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순종했습니까? 아니면 이용했습니까? 목장에 모인다는 명목으로 나의 감정적 필요를 채우거나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가 좋아서 교회의 한 몸인 것을 잃어버리고 사모임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비신자 VIP를 초청한다는 구실로 정말 필요한 예배의 요소는 버리지 않았는지 목장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물어야 합니다. 목장은 교회의 지체입니다. 교회 안에 작은 교회입니다. 목장이 교회를 떠나서는 더 이상 목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교모임이지 예배모임이나 영혼을 생명으로 이끌기 위한 선교모임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목장이 예수님 원하시는 바른 목장이 되길 원합니다. 교회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목장이 모일 때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나는 말씀에 순종합니까? 원리를 이용합니까?  -CSJ-


크리스마스를 회상하며


올해는 성탄절이 주일입니다. 보통 이민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행사를 치르고 성탄예배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성탄절을 지냈던 일을 생각하면 새벽송을 마치고 온 밤을 지새우며 선물을 포장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정작 성탄예배 때에는 꾸벅꾸벅 졸면서 성가대의 성탄 칸타타를 감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성탄예배가 끝나면 새벽송 때 받아왔던 선물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었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 떨어지는 눈을 받아먹으려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던 모습도 그려집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2,000여 년 전에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아기로 오셨습니다. 흠 없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온 삶을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의미는 구원의 기쁨과 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보호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 백성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몸소 십자가를 지심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또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선포하도록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교회는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구원의 기쁨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교회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생수의 샘이 되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어 세상문화를 거스르고 죄로 변질된 문화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혹자는 성탄절이 이방종교인 태양신 숭배 관습에 의해 정해졌다고 합니다. 성탄을 맞는 성도에게 그 날의 유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탄의 의미와 결과를 바로 선포하며 증거하는 기쁨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허락된 성탄의 소명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는 희락의 선포입니다.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성탄절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혼란한 세계 속에서도 성탄의 기쁨이 퇴색하지 않도록 교회는 세상을 향해 기쁨과 평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 기쁨은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도록 촉구하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그리워하도록 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에서 오는 슬픔을 딛고 예비된 앞날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겁니다. 미래를 준비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기뻐하도록 희락을 선포해야 합니다. 성도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특권을 자랑해야 합니다.
둘째는 사랑의 구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소외 당한 이들을 만나주시면서 질병을 치료해주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배고픔을 채워주시면서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신약교회가 이런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매주 과부를 돌보았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배고픈 이에게 복음과 함께 먹을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탄시즌에 더욱더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한 영혼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 아기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성탄절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CSJ-

Monday, December 5, 2016

신년 세겹줄 새벽기도회와 성령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내년 교회비전과 사역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 성도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깨달아 알고 그 뜻을 모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가정교회의 새해는 세겹줄 새벽기도회로 시작됩니다. 보통 10일 동안 새벽기도회를 작정하고 저녁 한끼를 금식합니다. 전날 오후 5시 이후부터 새벽기도 끝나는 시간까지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신앙서적을 정해서 이 기간 동안 같이 읽으면서 은혜를 나눕니다.
우리 교회는 화-금요일까지 새벽기도회를 유지하면서 두 주에 걸쳐 진행하려고 합니다. 1월 3일(화)부터 13일(금)까지 8일을 세겹줄 새벽기도회로 모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전날 오후 5시부터 저녁금식을 자유롭게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족 단위로 캘빈 밀러 목사님의 신앙도서 ‘성령이 이끄시게 하라’를 이 기간 동안 읽고 저는 이 도서에서 주는 영적인 교훈과 도전을 8번에 걸쳐 새벽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반드시 응답되었으면 좋을 제목들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 세가지를 꼭 준비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기도 짝 두 사람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세겹줄 기도회는 세 명이 함께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전도서 4장 12절 말씀처럼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고 세 겹줄이면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전방위로 역사하셔서 간구의 제목이 응답되는 결과가 일어남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숫자 3은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공동체를 움직이고 선한 운동력을 발휘합니다. 동성 간에 목장가족이 아니어도 평소 친분관계가 있는 분들과 짝을 지으셔서 새벽기도회 때 같이 모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같이 읽기로 결정한 성령에 대한 신앙서적을 꼭 읽으면서 기도회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확장되면서 성령의 능력이 어떻게 강력하게 우리 삶에 역사하는지 체험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을 때 은혜가 더 큰 것을 보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이스라엘 민족이 망하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고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이 신앙도서를 세겹줄 기간 동안 다 읽은 후에 14주에 걸쳐 ’성령이 이끄는 삶’이라는 성경공부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다스리는 자아를 위해 겸손과 순종함으로 지식을 쌓기 바랍니다.
셋째로, 세겹줄 새벽기도 기간 동안 서로를 위해 격려하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정적으로 상한 마음이 있더라도 무조건 칭찬하고 인정하고 밀고 땅겨주는 성도의 모습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교회와 가정과 각 개인에게 꼭 필요한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겁니다. -CSJ-


Monday, November 28, 2016

물에 잠기는 침례의 의미

침례는 외형적으로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침례라는 헬라어 원어는 물에 잠김을 의미하는 밥티조(Baptozo)에서 유래하여 영어의 침례(Baptism)가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침례는 열왕기하 5장에서 문둥병 환자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물에 일곱 번 자신의 몸을 담갔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침례 기원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침례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물 속으로 들어갔다(into) 나오는(out of)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은 죽고 새 생명으로 소생하여 새 사람으로 출생하는 신앙의 의미를 갖고 진행되는 예식으로 회중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깨닫고 마음에 영접했다는 고백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침례를 통해 옛 몸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내고,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침례는 종말론적으로 영원한 하늘나라의 부활체로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새 생명 가운데 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침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신 것처럼 성도도 침례를 통해 부활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됩니다.(롬 6:3-5)
그러므로 침례 받을 때 물에 잠기는 모습을 죽어서 매장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물 속에 잠길 때 이 전의 인생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사람에게 없는 것을 깨닫고 마음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침례 받을 때 선한 양심이 회복됩니다. 침례 예식 자체가 죄를 깨끗하게 하거나 구원을 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만이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공개적인 고백입니다.
신약교회에서 침례 혹은 세례가 죄의 고백과 함께 구원받은 확신으로 연결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명령합니다. 40절에서는 구원을 받으라고 외친 후 세례를 준 모습이 나옵니다.  22장 16절에서도 세례를 받고 죄 씻음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서는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침례나 세례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예식은 아니지만 죄의 고백과 구원의 확신이 같이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침례 전 행하는 문답은 침례 받을 자의 신앙고백으로 진정으로 반응하여 ‘예’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영원한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고백이 기본입니다. 물을 뿌려 행하는 세례는 주후 250년 경에 침상에 누워있는 중환자나 교회에 나올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식침례가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물을 뿌리는 세례예식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17세기 무렵 침례와 세례에 대한 주장이 종교회의에서 이루어졌지만 의견이 팽배하여 개 교회가 추구하는 침례예식을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믿는 신앙의 고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CSJ-


Monday, November 21, 2016

기도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기도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7주 동안의 수요 집회가 끝나고 나서 수요일을 계속해서 기도하는 날로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의 중간에 있는 수요기도회를 통해 남은 한 주일의 날들을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주에 자율기도 시간을 정해서 삽지를 배포했습니다만 새벽기도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을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Tom 목자가 헌신해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저녁시간에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자율기도시간으로 정하고 예배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요일을 수요기도회로 정하고 7시 30분에 자율기도회로 시작하되 8시에 찬양과 말씀 그리고 전체 기도회 시간을 30분 정도 갖고 다시 자율기도회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처음 시도하는 연속기도사역이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기도를 통해 온 성도가 예수님 닮아가는 성장과 성숙을 이루고, 가정이 복 받고, 자녀가 잘되며, 교회가 하나되고,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적 교회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 기도사역은 다니엘 금식기도를 내년 신년기도회 때부터 실행하려고 합니다. 올해 사순절 기간 동안 실행했던 8일 새벽기도회를 8일 신년축복기도회로 전환하면서 함께 다니엘 금식기도를 실천했으면 합니다. 다니엘 금식기도는 부분 금식기도로 하루에 한 끼를 금식할 수도 있고, 특정 음식을 절제하고 금하는 절식을 할 수도 있고, 3일 미만으로 온전히 금식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금식과 절식 일정을 정하고 21일 동안 실천하면 됩니다. 이 때 음식을 절제하는 대신에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신약성경 통독을 권장합니다. 정리하면 8일 새벽기도 -> 21일 다니엘 금식기도-> 신약 성경통독이 동시에 시작해서 이어지는 영성 사역이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는 관계를 회복하고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세 번째 기도하는 교회는 기도가 끊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om 목자의 헌신으로 매일 교회가 자율 기도하는 시간으로 채워져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무시로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지만 특별히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믿음의 행위는 기도에 대한 헌신된 자세를 통해 믿음의 공동체를 굳건하게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9-40절을 보면 예수님도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셔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정해진 시간에 성전에 올라 기도했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간을 정해서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습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힘과 능력이 기도의 습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일주일에 하루든 이틀이든 시간을 정해서 예배당에 나와 기도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개인적인 영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 및 이 지역사회와 이 나라와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습관을 따라 살아가는 능력의 삶을 우리 모든 성도가 체험하길 원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