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19, 2016

사유화할 수 없는 목장사역

가정교회는 목장을 통해 예배사역과 선교사역이 이루어지는 교회목회의 한 형태입니다. 주일예배가 목장연합예배로 이루어집니다. 비신자 VIP를 전도하여 목장에 초청함으로써 지역선교사역이 이루어집니다. 가정교회는 지성과 감성, 영성으로 현대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통전적 목회방식입니다. 삶공부는 말씀을 공부하여 지성을 넓혀줍니다. 주말마다 모이는 목장모임은 삶의 나눔을 통해 각박한 현대생활에서 마음을 녹이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감성을 회복합니다. 주일의 목장연합예배는 경배와 찬양, 설교와 결단을 통해 영성을 세워갑니다. 목장, 삶공부, 주일예배의 세 축이 가정교회를 이룹니다.
가정교회의 위대한 점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리더십에 철저하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세 축 핵심에 담임목사의 영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담임목사의 독재를 위한 구조가 아닙니다. 담임목사는 철저하게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뜻을 쫓아가라고 세 축의 중심에 놓여있는 겁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담대하게 선포했던 의미와 상통합니다. 담임목사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지역교회에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담임목사의 리더십이 아니고, 재물로 사회적 지위로 득세한 몇몇 교인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리더십이 실천될 수 있도록 담임목사가 먼저 선포된 말씀에 완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교인들은 선포된 말씀을 담임목사의 생각으로 여기지 않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정교회는 성공적인 목회로 자리잡고 부흥의 감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정교회는 성장을 추구하지 않지만 영적인 부흥이 교회에 일어나고 그 역사를 통해 지역사회가 하나님 나라로 확장되기를 소원합니다.
한 해를 마치면서 목장사역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의 목장은 내 목장이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목장이었는가? 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한 마음으로 모이는 공동체였는가? 나의 꿈을 이루는 공동체였는가? 목장은 누구 한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을 치라고 맡겨주신 사역의 공간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내 양을 치라고 부탁하신 그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순종입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순종했습니까? 아니면 이용했습니까? 목장에 모인다는 명목으로 나의 감정적 필요를 채우거나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가 좋아서 교회의 한 몸인 것을 잃어버리고 사모임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비신자 VIP를 초청한다는 구실로 정말 필요한 예배의 요소는 버리지 않았는지 목장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물어야 합니다. 목장은 교회의 지체입니다. 교회 안에 작은 교회입니다. 목장이 교회를 떠나서는 더 이상 목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교모임이지 예배모임이나 영혼을 생명으로 이끌기 위한 선교모임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목장이 예수님 원하시는 바른 목장이 되길 원합니다. 교회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목장이 모일 때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나는 말씀에 순종합니까? 원리를 이용합니까?  -CSJ-


크리스마스를 회상하며


올해는 성탄절이 주일입니다. 보통 이민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행사를 치르고 성탄예배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성탄절을 지냈던 일을 생각하면 새벽송을 마치고 온 밤을 지새우며 선물을 포장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정작 성탄예배 때에는 꾸벅꾸벅 졸면서 성가대의 성탄 칸타타를 감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성탄예배가 끝나면 새벽송 때 받아왔던 선물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었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 떨어지는 눈을 받아먹으려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던 모습도 그려집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2,000여 년 전에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아기로 오셨습니다. 흠 없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온 삶을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의미는 구원의 기쁨과 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보호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 백성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몸소 십자가를 지심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또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선포하도록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교회는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구원의 기쁨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교회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생수의 샘이 되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어 세상문화를 거스르고 죄로 변질된 문화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혹자는 성탄절이 이방종교인 태양신 숭배 관습에 의해 정해졌다고 합니다. 성탄을 맞는 성도에게 그 날의 유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탄의 의미와 결과를 바로 선포하며 증거하는 기쁨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허락된 성탄의 소명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는 희락의 선포입니다.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성탄절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혼란한 세계 속에서도 성탄의 기쁨이 퇴색하지 않도록 교회는 세상을 향해 기쁨과 평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 기쁨은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도록 촉구하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그리워하도록 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에서 오는 슬픔을 딛고 예비된 앞날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겁니다. 미래를 준비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기뻐하도록 희락을 선포해야 합니다. 성도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특권을 자랑해야 합니다.
둘째는 사랑의 구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소외 당한 이들을 만나주시면서 질병을 치료해주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배고픔을 채워주시면서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신약교회가 이런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매주 과부를 돌보았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배고픈 이에게 복음과 함께 먹을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탄시즌에 더욱더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한 영혼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 아기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성탄절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CSJ-

Monday, December 5, 2016

신년 세겹줄 새벽기도회와 성령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내년 교회비전과 사역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 성도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깨달아 알고 그 뜻을 모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가정교회의 새해는 세겹줄 새벽기도회로 시작됩니다. 보통 10일 동안 새벽기도회를 작정하고 저녁 한끼를 금식합니다. 전날 오후 5시 이후부터 새벽기도 끝나는 시간까지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신앙서적을 정해서 이 기간 동안 같이 읽으면서 은혜를 나눕니다.
우리 교회는 화-금요일까지 새벽기도회를 유지하면서 두 주에 걸쳐 진행하려고 합니다. 13()부터 13()까지 8일을 세겹줄 새벽기도회로 모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전날 오후 5시부터 저녁금식을 자유롭게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족 단위로 캘빈 밀러 목사님의 신앙도서 성령이 이끄시게 하라를 이 기간 동안 읽고 저는 이 도서에서 주는 영적인 교훈과 도전을 8번에 걸쳐 새벽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반드시 응답되었으면 좋을 제목들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 세가지를 꼭 준비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기도 짝 두 사람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세겹줄 기도회는 세 명이 함께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전도서 412절 말씀처럼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고 세 겹줄이면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전방위로 역사하셔서 간구의 제목이 응답되는 결과가 일어남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숫자 3은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공동체를 움직이고 선한 운동력을 발휘합니다. 동성 간에 목장가족이 아니어도 평소 친분관계가 있는 분들과 짝을 지으셔서 새벽기도회 때 같이 모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같이 읽기로 결정한 성령에 대한 신앙서적을 꼭 읽으면서 기도회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확장되면서 성령의 능력이 어떻게 강력하게 우리 삶에 역사하는지 체험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을 때 은혜가 더 큰 것을 보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이스라엘 민족이 망하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고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이 신앙도서를 세겹줄 기간 동안 다 읽은 후에 14주에 걸쳐 성령이 이끄는 삶이라는 성경공부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다스리는 자아를 위해 겸손과 순종함으로 지식을 쌓기 바랍니다.
셋째로, 세겹줄 새벽기도 기간 동안 서로를 위해 격려하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정적으로 상한 마음이 있더라도 무조건 칭찬하고 인정하고 밀고 땅겨주는 성도의 모습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교회와 가정과 각 개인에게 꼭 필요한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겁니다. -CSJ-


Monday, November 28, 2016

물에 잠기는 침례의 의미

침례는 외형적으로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침례라는 헬라어 원어는 물에 잠김을 의미하는 밥티조(Baptozo)에서 유래하여 영어의 침례(Baptism)가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침례는 열왕기하 5장에서 문둥병 환자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물에 일곱 번 자신의 몸을 담갔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침례 기원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침례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물 속으로 들어갔다(into) 나오는(out of)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은 죽고 새 생명으로 소생하여 새 사람으로 출생하는 신앙의 의미를 갖고 진행되는 예식으로 회중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깨닫고 마음에 영접했다는 고백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골로새서 212절에서 침례를 통해 옛 몸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내고,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침례는 종말론적으로 영원한 하늘나라의 부활체로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새 생명 가운데 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침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신 것처럼 성도도 침례를 통해 부활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됩니다.(6:3-5)
그러므로 침례 받을 때 물에 잠기는 모습을 죽어서 매장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물 속에 잠길 때 이 전의 인생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사람에게 없는 것을 깨닫고 마음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침례 받을 때 선한 양심이 회복됩니다. 침례 예식 자체가 죄를 깨끗하게 하거나 구원을 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만이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공개적인 고백입니다.
신약교회에서 침례 혹은 세례가 죄의 고백과 함께 구원받은 확신으로 연결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238절에서 베드로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명령합니다. 40절에서는 구원을 받으라고 외친 후 세례를 준 모습이 나옵니다.  2216절에서도 세례를 받고 죄 씻음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마가복음 1616절에서는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침례나 세례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예식은 아니지만 죄의 고백과 구원의 확신이 같이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침례 전 행하는 문답은 침례 받을 자의 신앙고백으로 진정으로 반응하여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영원한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고백이 기본입니다. 물을 뿌려 행하는 세례는 주후 250년 경에 침상에 누워있는 중환자나 교회에 나올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식침례가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물을 뿌리는 세례예식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17세기 무렵 침례와 세례에 대한 주장이 종교회의에서 이루어졌지만 의견이 팽배하여 개 교회가 추구하는 침례예식을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믿는 신앙의 고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CSJ-


Monday, November 21, 2016

기도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기도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7주 동안의 수요 집회가 끝나고 나서 수요일을 계속해서 기도하는 날로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의 중간에 있는 수요기도회를 통해 남은 한 주일의 날들을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주에 자율기도 시간을 정해서 삽지를 배포했습니다만 새벽기도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을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Tom 목자가 헌신해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저녁시간에 730분부터 930분까지 자율기도시간으로 정하고 예배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요일을 수요기도회로 정하고 730분에 자율기도회로 시작하되 8시에 찬양과 말씀 그리고 전체 기도회 시간을 30분 정도 갖고 다시 자율기도회를 이어가려고 합니다처음 시도하는 연속기도사역이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기도를 통해 온 성도가 예수님 닮아가는 성장과 성숙을 이루고, 가정이 복 받고, 자녀가 잘되며, 교회가 하나되고,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적 교회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 기도사역은 다니엘 금식기도를 내년 신년기도회 때부터 실행하려고 합니다. 올해 사순절 기간 동안 실행했던 8일 새벽기도회를 8일 신년축복기도회로 전환하면서 함께 다니엘 금식기도를 실천했으면 합니다. 다니엘 금식기도는 부분 금식기도로 하루에 한 끼를 금식할 수도 있고, 특정 음식을 절제하고 금하는 절식을 할 수도 있고, 3일 미만으로 온전히 금식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금식과 절식 일정을 정하고 21일 동안 실천하면 됩니다. 이 때 음식을 절제하는 대신에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신약성경 통독을 권장합니다. 정리하면 8일 새벽기도 -> 21일 다니엘 금식기도-> 신약 성경통독이 동시에 시작해서 이어지는 영성 사역이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는 관계를 회복하고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세 번째 기도하는 교회는 기도가 끊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om 목자의 헌신으로 매일 교회가 자율 기도하는 시간으로 채워져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무시로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지만 특별히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믿음의 행위는 기도에 대한 헌신된 자세를 통해 믿음의 공동체를 굳건하게 합니다. 누가복음 2239-40절을 보면 예수님도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셔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정해진 시간에 성전에 올라 기도했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간을 정해서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습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힘과 능력이 기도의 습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일주일에 하루든 이틀이든 시간을 정해서 예배당에 나와 기도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개인적인 영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 및 이 지역사회와 이 나라와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습관을 따라 살아가는 능력의 삶을 우리 모든 성도가 체험하길 원합니다.   -CSJ-


Monday, November 14, 2016

통전적 가정교회의 구조

종교개혁 이후 평신도 사역이 강화되면서 소그룹 모임이 더욱 발달해졌습니다. 17세기경 독일 경건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스페너(Philip Sperner)에 의해 시작된 경건한 모임(collegia pietatis)이라는 소그룹 모임은 일주일에 두 번, 남녀가 함께 모여, 이전 주일의 설교말씀에 대해 나누고 경건 서적을 함께 읽으며 성경해석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현대에도 새로운 형태의 소그룹 모임이 수정되고 창조되고 있습니다. 빌 헐(Bill Hull)소그룹 운동을 통해 교회의 부흥뿐만 아니라 사회의 도덕적인 갱신을 일구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이는 교회가 영혼구원과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사명을 위해 구조적으로 회중이라는 대그룹과 목장 이라는 소그룹을 통전적으로 운영할 때 더욱 효과적임을 깨닫게 합니다.
가정교회의 구조는 통전적 교회구조를 담아낼 수 있도록 소그룹 목장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가정교회의 구조는 교회를 인격을 소유한 유기체로 보고 형성되었습니다. 사람은 통전적 존재로서 영, 정신, 몸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분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 요소들의 가치는 등급화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즉 어느 한 요소가 지배하는 통합적 구조가 아니라 세 요소가 균형 있게 활동하는 통전적인 구조입니다특히 지, , 의로 구성되는 정신적 요소는 사람의 인격을 결정지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수평적으로는 타자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갖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성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압축되는 거룩한 인격체로 성숙되어 예수님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명을 공유하는 언약공동체를 이룹니다
가정교회 구조는 가정집(오이코스)에서 남녀가 함께 모이는 목장모임과 목장들이 주일에 함께 모이는 주일목장연합예배, 그리고 구성원의 영적 풍성함을 위해 학습하는 삶공부가 세 겹줄로 엮여 있고 그 중심에 목사로서 안수 받은 담임목회자의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는 통전적 구조입니다. 담임목회자는 기도와 말씀 연구에 전념하여 목장 리더로서 평신도 사역자들을 세우고 도우며, 주일예배 설교와 성찬과 세례(침례)을 이끕니다. 그리고 통전적 인격을 형성하는 지, , 의 세 요소가 삶공부, 목장모임, 주일예배로 연결됩니다. 삶공부는 담임목회자와 평신도 사역자인 목자가 함께 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진행하고, 목장모임은 평신도 사역자인 목자가 이끕니다.
가정교회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목자는 먼저 구성원들의 풍성한 삶을 위해 집을 열고 음식을 준비하고 구성원들의 삶의 필요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목장모임은 선교적 모임이 됩니다. 즉 비신자들을 목장에 초대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험하게 하고 교회의 지체로 세워질 수 있도록 돌보고 이끕니다. 목장모임, 삶공부, 주일예배가 통전적 구조로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사명을 갖게 하여 사회 속으로 다시 파송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순환사역이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이 가정교회 사역은 목장, 예배, 삶공부가 세 겹줄로 결합된 통전적 구조 속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21세기형 소그룹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CSJ-


Monday, November 7, 2016

가정교회의 기도사역 6

 가정교회 공동체를 묶어주는 띠를 세겹줄 기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효근 박사는 세겹줄 기도를 통전적 기도모형으로 정의하고 각 줄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첫 번째 줄은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시작되는 기도입니다. 에베소서 2:18에서 “…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6: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에 근거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으로 역사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인본적 형상에서 하나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고후 3:18). 성령께서는 인본적 특성인 지, , 의를 통해 성도의 기도에 관여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 성경말씀을 깨닫게 되고, 감성적으로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며,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게 합니다. 기도할 때 생기는 감화와 능력은 결코 맹목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언약을 따라 기도의 은혜가 임합니다. 성도는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정되어 구원받고 교회의 지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이 믿어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를 로봇처럼 조정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성도와 교제하기 때문에 말씀을 깨닫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결단할 때까지 기다리고 지켜보십니다. 성령께서는 성도가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축복의 길로 가기를 원하시지만 결코 독선적이고 비인격적으로 성도를 이끌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줄은 말씀을 통한 기도입니다. 대화는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겁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일반계시인 자연의 법칙으로 세상을 운행하시면서 동시에 특별계시인 성경말씀과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 성도와 대화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말씀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쉬지 않고 읽고 들고 묵상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머리 속에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겨서 가치관과 판단과 인격의 기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의식 속에 둔다는 의미는 마치 음식을 씹고 입 안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음식을 입 안에 둘 수는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마음 판에 새긴다는 의미는 잘 씹은 말씀을 삼키면 소화가 되고 신체에 스며들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읽고 듣고 쓰고 암송한 성경말씀이 정신과 육체를 강건하게 하는 영양분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도하고 믿고 성령께 의탁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무의식과 의식세계에 충만할 때 믿음이 견고하게 되고 성령께서 충만이 거할 수 있는 내면세계가 형성됩니다.     
세 번째 줄은 삶으로 즉 행함으로 완성되는 기도입니다. 야고보 2:26에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인격이 변화되고 삶의 태도와 자세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바른 기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기도의 습관이나 기도의 양이 아니라 기도로 인격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고 그 변화가 인격으로 나타나 행동과 말과 표정이 예수님 닮아가게 됩니다. 이로써 세겹줄 기도가 통전적으로 완성되어 성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믿지 않는 영혼을 전도하게 됩니다. -CSJ-


Monday, October 31, 2016

가정교회의 기도사역 5

기도는 성령에 의해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따르지 않는 자의적인 기도는 여느 종교에서 하는 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기도는 성령과 함께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의 전부를 맡기고 간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는 특권이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에게서 나옵니다. 이 일은 로마서 8:15에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을 때 일어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우물쭈물하며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기도하는 권세입니다. 교회의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미래의 후사입니다.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성도 안에 거하실 때 하나님께 올려 드려지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말하기 위해 깊은 숨을 들이쉬듯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 내면세계를 주장하도록 해서 기도할 때 성령을 따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면 기도의 내용이 입술로 표현됩니다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내 안에 성령이 기도를 주관하시도록 맡겨드리면 성령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겁니다. 존 머리(John Murray)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비록 우리가 성령의 간구를 알아들을 수 없을지라도 분명한 의도와 취지가 담겨 있다....비록 우리의 언어와 인식을 초월할지라도 우리가 성령으로 지음 받고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분을 따를 수 있다.
진정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에 의한 기도는 영으로 하는 기도와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통전적으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영으로 하는 기도는 방언기도라고 말합니다(고전 14:14). 그런데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칼빈주의를 따르는 개혁교회 흔히 장로교는 말씀 교육의 지성주의를 강조하면서 은사종료주의를 주장하며 신약교회의 방언기도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성령의 은사로 방언기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방언의 기도가 과거 신약교회의 종료된 사건이 아니라 종말론적 은사로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기도의 한 방편임을 증거합니다. 분명 바울도 교회에서 방언을 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고전 14:39)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로버트 하이들러(Robert Heidler)는 방언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1) 우리의 영을 강건하게 해 주고 (2) 기도를 강력하게 하며 (3) 찬양이 강력해지고 (4) 원수마귀를 대적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준다고 합니다. 가정교회의 새벽 개인기도는 영으로 기도하는 시간으로 성령을 따라 영으로 기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도 기도하라고 당부합니다(고전 14:15).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공동체를 향한 기도로 지성을 이용하여 공동체가 동의하고 아멘하며 덕을 세우는 기도입니다가정교회는 세겹줄 기도로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통해 공동체를 견실하게 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