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29, 2015

가정교회의 성령 사역 2

가정교회의 성령사역은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가정교회는 초대교회의 원형과 정신을 계승하고 현대사회에 적용하려고 하는 목회원리에서 비롯된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로 시작되어 조직교회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기초에는 성령의 사역이 뒷받침되어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성령사역을 현대에 이민교회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역사가 일어난다(19:5,6). 교단적으로 오순절 교회에서는 구원 이후에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과 예언이 그 표징으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보수주의 교단에서의 의견은 다르다. 그래서 성령세례에 대한 신학이론은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목회현장에서 성령사역에 대한 이견이 충돌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현상적으로 방언과 예언을 하는 목자가 가정교회를 이끌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대에도 방언과 예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신학적인 이견이 된다. 현대교회에서 영적인 현상은 방언 외에도 직통계시, 금니 발생, 기도 받을 때 쓰러지는 현상, 치유, 불세례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영적인 현상을 가정교회가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 사실 이 주제는 가정교회에게는 큰 숙제가 아니다. 가정교회는 영적 현상을 추구하거나 성령운동을 일으키는 목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교회에서도 성령사역의 한 단편으로 영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성령사역의 모든 것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가치 있고 분명한 성령사역이 성경에 나타나 있고 초대교회에 전개되어 있는데 지협적인 현상 때문에 성령사역의 본질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사탄의 전략이 될 수 있다.
가정교회는 초대교회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도록 사도를 따로 세운 것처럼 목회자를 기도와 말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전념한다는 것은 모든 생활 속에 기도와 말씀을 적용하고 예수님 닮아가는 성숙한 인격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삶의 모습을 갖추고 싶지만 여전히 죄성을 안고 사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순간의 유혹과 싸워야 하고 세상 가치관을 분별해내야 하고 사탄의 전략을 간파하고 대적해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성령께서 성도에게 필요하다면 방언도 주시고 예언도 치유도 쓰러짐도 또 다른 영적 현상도 주신다. 그러나 영적인 현상은 교회사역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성령과 늘 동행하며 모든 삶의 문제를 질문하고, 풀 수 없는 상황을 성령께서 개입하시고 간섭하도록 의탁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생활이 된다.
성령 충만한 신앙은 영적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질병이 치유 받을 수도 있지만 치유되지 않는 것도 성령 충만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성숙한 가정교회의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주권에 의탁하여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배우고 연구한다. 성령사역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곧 성령이시다. 모든 성령사역을 인정하되 우리 가정교회가 취할 수 있는 건강한 성령사역을 기대하고 수용해야 한다. -CSJ-


가정교회의 성령 사역

구원받은 백성으로 교회의 지체를 이루며 이 땅을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8:9).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주관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성도가 자발적으로 성령께 의탁할 때 성도의 삶을 주관합니다.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내가 성령의 전임을 깨닫는 것이 거룩한 삶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에서 성령사역은 교회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보면 성령 사역의 장은 교회이며 사역의 내용은 성도의 교제가 있고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입니다즉 교회와 구원과 종말이 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교회의 성례전인 성찬과 세례는 성령님을 체험하는 예식이 됩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연장이며 체험적이고 행위적이고 특히 교회의 체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모든 사역에 성령께서 간섭하십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통하여 회개와 용서와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나갑니다. 성령께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시킵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시면서(1:8)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어 말씀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실 성령님을 주셨습니다(28:16-20).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사역이 가정교회의 기초가 됩니다.
성령충만한 설교와 성경공부는 신앙을 회복시키는 촉매제가 됩니다. 성찬과 세례는 죄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와 한 몸 되어 연합하게 되는 가시적 성령사역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성령사역의 동역자를 세웁니다. 사도들의 안수가 있을 때 성령이 임하게 되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봅니다. 성령이 충만한 집사들을 세워 교회를 돌보게 합니다. 가정교회의 목회자는 성령충만하여 기도와 말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성도는 성령충만하여 교회를 운영하고 섬기며 일터에서 영혼을 전도하면서 성령님의 사역에 참여합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성장, 성숙하게 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되는 교제를 이루도록 하십니다. 교회는 언약공동체 입니다. 성령님께서 세대를 초월하여 공동체를 연결하고 돈독하게 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가정교회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있도록 성도를 이끕니다. 또 성도들 사이에 온전한 교제가 있도록 촉구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불신자들과 교제하도록 격려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교회를 표현하는 다른 말입니다. 가정교회는 특별히 불신자들과 교제하는 목장을 통해 영혼구원에 전념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거룩함에 참여하는 겁니다. 즉 성례전 입니다. 불신자들이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자체가 성령님의 구원사역입니다. 가정교회의 성령사역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신약교회 정신에서 비롯됩니다. -CSJ-


Monday, December 21, 2015

가정교회의 전도

전도는 성도들이 힘들어하는 중요한 교회사역중 하나입니다. 전도를 내가 한다고 할 때는 어렵지만 성령께서 하신다고 생각하면 편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복음이 필요한 영혼을 만났을 때 할 얘기를 떠오르게 하시고 대화의 주제를 주관하십니다. 전도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성령께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복음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 만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하실 일을 내가 하려고 하니 전도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약속을 잡는다든지, 점심 먹자고 하고 일부러 찾아가 얼굴을 보는 일이 전도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실제적인 만남의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성령님은 우리의 입술을 주관하셔서 무슨 주제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이끄십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사람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만이 죄를 씻기고 죄의 결과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보혈의 피를 경험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전도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복음의 지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나를 소개하고 나의 변화를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는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나의 수다스러운 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고 내 얘기를 나누는 자체가 전도의 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증인이 되고 가르치고 제자 삼는 행위를 전도의 연장선상에 봅니다. 이것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합니다.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소개하는 행위는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을 고민하고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구도자들에게 복음은 참으로 필요합니다. 단순히 목돈이나 모으는 계 모임을 피하고, 시간을 죽이려고 만나는 모임을 피하고, 삶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만남이 전도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구도자가 예수님을 믿고 싶다고 얘기하면 그 때 복음을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갈망하는 영혼을 등한시 하는 무관심은 죄입니다. 내가 이해하고 믿고 있는 바를 분명하게 선포하고 영접기도까지 이끌고 가야 합니다. 그 시간이 한 영혼을 살리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40초마다 자살자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물리적 충돌이나 전쟁, 자연재해, 질병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놀라운 것은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는 대화라는 겁니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 중 대화치료를 받으면 5년 안에 자살할 확률이 26%나 떨어진다고 합니다. 소중한 지금의 대화가 한 생명을 살립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증거하는 복음이 한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모든 성도는 복음의 전도자입니다. 전도자가 되는 길은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만남으로는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복음의 확신으로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CSJ-


Monday, December 14, 2015

가정교회의 가족이란?

가족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일차적 사회 집단입니다. 가족구성원은 혈핵형, 문화와 소유 및 습관을 공유하며 삽니다. 그리고 부모세대는 자녀세대에게 가문의 유산을 물려줍니다. 유산은 재정, 땅과 같은 물질이 될 수도 있지만 성실함, 정직함 등 정신적 재산을 자녀에게 남겨줄 수도 있습니다.
신앙유산을 전수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무척이나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기술문화가 발전하면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되었지만 새로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세계관이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 지도자의 부패와 타락은 자녀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태에 맞춰 최근 21C 목회연구소에서는 다섯 가지 당위성을 가지고 신앙유산이 다음세대에게 물려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계획 성취를 위하여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둘째, 의식의 변화를 위하여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셋째, 교회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서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넷째, 이탈 신자의 방지를 위해서 신앙 전수를 해야 합니다.
다섯째, 미래를 위한 대안 제시를 위해서 신앙 전수를 해야 합니다.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주려면 지금 부모세대의 신앙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자녀들이 본받고 싶어할만한 신앙의 가치가 드러나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어떤 유산이 자녀들에게 이어지면 좋을지 부모세대가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믿으면 모든 게 잘돼라는 막연한 얘기가 아니라 부모세대가 체험한 신앙의 결과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 잘 나가야 돼라는 외침도 불필요해 보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부모세대가 어떻게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해 왔는지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교회는 특별히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이 물려지기를 기대합니다. 가정교회는 다음세대 자녀들도 우리와 똑같이 신앙 생활하면 형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확신에 찬 신앙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섬김의 역사입니다.
가정교회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세워지는 교회의 사역입니다. 목자와 목녀는 목장모임을 위해 가정을 열고 음식을 준비하며 섬깁니다. 매주일 가정에 목원들을 초대하고 음식을 공급하는 사역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목자, 목녀가 이 섬김의 사역에 헌신하면 목원들이 복음으로 바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왜 부모님을 존경하고 좋아할까요? 자신들을 위해 수고하고 섬기고 돌봐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워도 서운해도 자녀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섬겼던 겁니다. 부모의 사랑이 바탕에 깔려있는 단순한 섬김이 자녀들에게 부모의 마음을 깨닫게 합니다. 가정교회의 부흥의 원리는 섬김에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목원들을 향해 섬김을 다하는 겁니다. 목원들은 목자와 목녀의 신앙과 섬김을 물려받고 다음 목장을 개척하게 됩니다. 섬김이 가정교회 유산입니다. -CSJ-



Monday, November 30, 2015

평신도의 목양

기존교회에서 목양은 목회자들만의 사역으로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가정교회에서는 목양이 평신도에게 전가됩니다. 초대교회가 사도행전 6장에서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기 위해 목양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집사를 세워 평신도에게 일임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사역과 육적인 사역을 구별하여 교회사역을 효율적으로 감당하도록 한 것입니다. 교회사역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신학교육을 받고 목회의 경험이 있는 목회자가 기도에 전념하고 말씀을 연구하여 설교하고 성경을 교육하는 더 좋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경험도 있고 사회전문 분야에 은사가 있는 평신도가 구제와 교회행정과 재정과 프로그램을 맡아 주관하는 것이 더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회자가 컴퓨터나 행정, 재정, 관리사역에 전문가일 수도 있습니다. 평신도도 기도해야 하고 때로는 설교를 하거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교회의 목회원리는 초대교회의 원리를 지향하고 사역을 구별하되 성역화하지 않고 목회자, 평신도 공동의 사역으로 은사에 따라 교회사역을 분담하게 합니다. 전문적이고 더 신령한 교회사역을 꿈꾸는 겁니다. 교회사역은 영적인 사역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육적인 사역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기도와 말씀이 늘 중심에 새겨져 있고 행동과 실천으로 교회사역을 이루어갈 때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하여 확장됩니다.
평신도가 목양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은사가 잘 활용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영혼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목양을 단지 정보를 나누고, 가르치고, 상하관계를 유지하고,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고, 지배적 위치를 고수하는 모양으로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기도하고 있는지, 말씀보고 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시험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가정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적 영적 비밀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절대 다른 평신도에게 목양의 내용을 나눠서는 안됩니다. 목양의 내용은 목회자와 상의하고 기도하고 말씀에서 지혜를 찾고 기도가 응답되도록 중보하며 하나님의 때가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또 목회자는 각 목장에 맞는 목양의 원리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목자와 목녀를 통하여 목양하고 있음을 수용해야 합니다.
목양의 꽃은 역시 심방입니다. 방법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심방은 전화, 방문, 메시지, 이메일, 카톡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목적론적으로 보면 격려, 위로, 동행, 공생하기 위해 심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목양사역은 내 시간을 나눠 쓰는 사역입니다. 함께 울어주고 기뻐해주며 모든 상황 중에 함께 해주는 모습이 목양입니다. 목양을 위해서는 공간을 초월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어디든지 운전하고 가서 만나겠다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 공간으로 가셔서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을 안고 평신도는 사랑과 구원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내 방문이 필요한 영혼을 오늘 찾아보세요! -CSJ-


Monday, November 23, 2015

감사 나눔

매주일 모이는 목장모임에는 여러 가지 순서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값진 것은 감사 나눔시간입니다. 지난 주 설교를 통해 받은 은혜를 혹은 새벽기도회 시간에 받은 말씀을 또는 개인적으로 큐티하며 읽고 있는 말씀을 나눌 수 있습니다. 보통 나눔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네 가지 정도 유형으로 나눔의 내용이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은혜 받은 말씀의 내용을 나눌 수 있습니다. 모르던 내용을 깨닫게 되었다든지 새로운 각도로 말씀을 보게 되었을 때 나눔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들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이 항상 존재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성령의 조명하심을 기대하며 말씀을 접하면 이런 놀라운 경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듣고 깨달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적용할 지를 생각하는 과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말씀에 내 생각과 가치관을 맞춰가는 과정입니다. 기존의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체계화 된 생각을 목장모임에서 나눌 수 있습니다.  
또 나눔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 깨달은 말씀이 적용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 때 전후 사정과 말씀을 적용했을 때 일어난 결과를 나눌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나눔은 성패여하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 지를 관찰하고 기대하는 겸손한 신앙 표현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눔 시간에 우리는 삶의 사건얘기를 그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상도 못했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일어난 사건들을 나눔으로써 매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방법을 고백하게 됩니다. 나의 실수, 말다툼, 당황스러운 상황, 격려와 위로가 되었던 정보나 사건, 방문을 통한 경험 등 다양한 나눔의 소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눔은 자신이 겪은 사건이나 상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그 일 다음에 있었던 본인의 감정변화와 깨달음, 결단, 감사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목장에서의 나눔은 우리 안에 있는 쓴뿌리를 제거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내면세계를 만지시고 치유하시는지를 간증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목장의 나눔은 비밀유지를 약속하고 서로 보장해야 합니다.
아마도 제일 좋은 나눔은 감사의 제목을 찾아 나누는 적극적인 나눔이 될 겁니다. 한 주일 동안 감사의 제목이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겁니다.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서부터, 자녀, 이웃, 교회, 직장, 사업체, 지역사회, 국가, 지구, 우주로 확대하면서 감사할 제목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하면할수록 계수할 감사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더욱 민감하게 신앙생활하기를 부탁 드립니다. 말씀에 민감할 때 깨달음이 깊어집니다. 말과 행실에 민감할 때 절제하고 인내하게 됩니다. 은혜에 민감할 때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쉬지도 졸지도 않으시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감사는 끝이 없습니다.  -CSJ-



Monday, November 16, 2015

가정교회의 예수영접

 예수영접모임은 가정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교회입문과정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믿고 그 분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는 고백을 예수영접모임에서 하게 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에 근거합니다.
영접하다의 헬라어는 람바노 λαμβάνω로 붙잡고 사용하기 위해 취하는 것입니다. ’믿는다의 헬라어는 피스트유오 πιστεύω 로 수긍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모든 사람이 압니다. 그렇지만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 편에서 볼 때 영접은 예수님을 믿기로 생각을 정하고 그 분을 따르기로 결단하여 행동하는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중심에 자리잡으시고 주인 되시고 성령님께서 활동하십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불신자의 영접은 하나님이 택하신 영혼이 돌아오는 오랜 기다림의 끝이 됩니다.
복음의 능력은 영접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있지만 복음의 능력은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캠퍼스에서 지나가던 학생들을 세워놓고 4영리를 설명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권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길거리를 걷는 현대인들에게 같은 전도방법을 시도하지만 현대인들은 시간을 내주지 않고 마음을 쉽게 열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사탄은 개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과학문화를 발전시켜서 다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인성, 영성 문화를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믿은 성도의 신앙과 복음의 능력이 불신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겁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행하신 제자양육의 방법이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을 압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과 3년간 함께 먹고 자고 동거하면서 전도하고, 제자들을 양육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초청에 반응하여 영접했고 예수님의 인성을 보고 배웠으며 예수님의 영성을 쫓아 기도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이 방법을 현대과학문화를 악용하여 저지하려고 합니다. 또 사탄은 예수님이 성공한 사람이냐고 반문하며 불신자들을 유혹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순교당하고 핍박당하고 싶으냐고 도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성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축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이 땅의 신분이 축복을 받은 하늘 가문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은 애찬을 통해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십자가 구원의 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성도가 함께 모여 애찬을 나누며  삶을 나누며 그리스도인의 축복의 삶을 이룩하자는 것이 가정교회의 목장입니다. 불신자들을 영접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목장의 나눔을 통해 일어납니다. 영접이 필요한 영혼을 목장으로 초대하는 것이 전도의 시작이고 예수영접모임이 제자양육의 첫걸음입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