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28, 2018

Faith 10


야고보서를 공부하면서 믿음의 목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까지 선포합니다. 믿음을 추구하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10가지 분야에서 10% 헌신하는 모습을 정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에서 10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십일조는 소득의 101을 하나님께 드리지만 모든 것을 드리는 신앙의 표현을 의미합니다. 물질, 시간, 봉사 등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의 행위는 전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신앙이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율법주의자처럼 행위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십일조를 드리되 정의와 긍휼, 믿음과 사랑을 함께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목표를 세우고 추구하려는 목표 4가지와 개인의 믿음의 분량에 대한 목표 6가지를 정했습니다. 이를 Faith 10이라고 명명했습니다. Faith 10는 마음으로 믿고 행함으로 실천하는 산 믿음을 회복하는 교회와 가정 및 신자의 거룩한 목표입니다.
첫째로, 매년 회원교인의 10%의 비신자를 침례하길 원합니다. 둘째로, 구원받고 교회의 지체로 세워져야 할 VIP 영혼들이 회원의 10%가 되도록 합니다. 셋째로, 목장에서 후원하는 선교사를 위해 예산의 10%를 지출합니다. 넷째로,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에 예산의 10%를 쓰도록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믿음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다섯째로 신자는 한달 재정의 10%을 교회와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쓰도록 합니다. 여섯째로, 한 달 생활의 10%를 전도를 위해 사용합니다. 일곱째로 한 달 생활의 10%를 봉사와 목장 섬김을 위해 씁니다.
다음은 개인의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위해 세운 믿음의 목표입니다. 여덟째로 하루 생활의 10%를 말씀읽기, 묵상, 암송에 씁니다. 아홉 번째로 하루 생활의 10%를 기도와 간구 및 중보기도에 힘씁니다. 마지막으로 하루 생활의 10%를 이웃들과 나누는 생활의 간증과 은혜의 대화로 사용합니다.
이 믿음의 목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한 노력입니다. 믿지 않는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교회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물질의 10%를 사용하기로 결단하면서 다음세대의 신앙을 위해 영적인 투자를 하는 겁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결단과 행함이 필요합니다. 또 성도들이 신실한 제자로 성장하고 성숙해 갈 수 있도록 목표를 제시 합니다. 10%의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여 교회를 섬기고, 목장을 섬겨 비신자 영혼들이 목장에 참여하고, 교회를 떠나 있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목장을 통해 다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예수님의 몸의 지체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말씀과 기도로 돈독한 신앙을 갖고 간증과 대화로 전도에 힘쓰는 믿음의 생활을 하기 위함 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해왔던 부분도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해오던 부분도 있습니다. 이제 삶의 10%를 최소한의 목표로 세우고 좀더 많이 헌신하고 결단하여 하나님 원하시는 건강한 신앙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CSJ-


Sunday, January 21, 2018

축복의 사역, 목장의 사역

모든 성도는 교회생활을 통해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목표를 위해 신학 공부를 마친 목회자는 말씀을 선포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열심으로 기도하며 성도가 제자로 세워지도록 노력합니다. 가정교회에서 목회자가 감당하는 사역은 기도와 말씀 선포에 집중됩니다. 가정교회는 목회자만 사역하지 않고 평신도가 함께 영혼구원과 제자 삼는 일에 동역합니다. 평신도는 목장을 열어 비신자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VIP 영혼으로 정하고 초대하여 영혼구원 사역을 감당합니다.  가정교회에서 생명의 삶 공부는 담임목회자가 인도하지만 다른 삶 공부는 평신도 목자가 감당합니다. 제자 삼는 사역도 목회자와 평신도가 같이 이루어 갑니다. 이렇게 VIP 영혼을 예수 영접하고 구원하여 제자 삼고 이들이 성장하여 목장의 목자로 임명되어 생활의 선교사로 파송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집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면서 매주 목장을 열고 삶 공부를 인도하거나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과 사업을 통해 생활비를 벌면서 또 가족을 돌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무척이나 어려운 일 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목장사역을 감당하면서 오히려 사업이 잘 되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많은 간증이 가정교회에서 생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하는 목장사역을 감당하는 성도의 생활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목장을 열기 위해서 집을 구했더니 집을 얻게 되고, 안정적인 사역을 위해 신분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간구했더니 신분이 해결되고 물질이 공급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로 다른 영혼을 섬길 때 정신과 영혼이 건강해 진다는 겁니다. 목장을 여는 일은 분명 육체에 힘든 일인데 다른 영혼들을 섬기고 택하신 VIP를 초대하려고 기도했더니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영혼의 능력이 생긴 겁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해야 실제의 일들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많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도 정신적으로 약해지고 정직과 공의를 추구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되고 무너지게 되는 모습을 봅니다. 셋째는 섬기려고 하면 섬김을 받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영혼을 섬겼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나를 위해 더 많이 일하시고 다른 이웃들을 통해 환경을 통해 내가 더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확신이 있을 때 목장사역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와 동고동락하는 목장을 만들어 3년 동안 함께 사역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축복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 씩 짝을 지어 전도여행을 보낼 때에 돈이나 옷이나 음식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급 받도록 하였습니다.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사역 속으로 제자를 파송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은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방문하는 가정마다 축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빈 축복을 받으면 그 가정이 복을 받지만 거절하면 선포하는 당사자에게 축복이 임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목장사역은 바로 축복의 사역입니다.-CSJ-


Sunday, January 14, 2018

세속문화, 예수님 문화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자연과 우주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고 인간을 만드신 후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선으로 창조하셨지만 악마는 인간을 죄로 유혹하여 악으로 오염시켰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지성과 감성과 영성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고 건설하였습니다. 창조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의 문화는 선의 문화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악의 문화도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이성이 중요해지면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세속문화가 형성되었지만 하나님 없이도 인간이 모든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인본주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과학기술문화를 유산으로 물려주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학문은 깊어지고 넓어지며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성취되고 이해되지 못했던 현상들이 규명될 것이라 믿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연과 우주가 진화되듯이 인간의 능력도 끝없이 진화되어 미래세대는 지식의 총아가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이렇게 세속주의는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뿌리를 내리고 세속문화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세속문화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발전하여 인류에게 무신론을 정당화 시켰습니다. 생물진화는 하나님의 능력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자연현상으로 이해되고, 과학기술 진화를 통해 인간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내고 인류가 행복하게 될 유토피아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세속문화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선과 악을 스스로 분별하지 못하고 온전한 인간을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못합니다. 구약시대에 나타났던 죄악의 모습이 여전히 세속문화 속에 나타나고 있고, 인류는 여전히 질병과 가난 속에서 불안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성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룬 세속문화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속문화는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근대교회는 부흥이라는 이름 아래 성장을 추구하면서 이성에 매달렸고 과학기술문화에 의지 했습니다. 믿음으로 실천하는 사랑을 등한시하고 오히려 성도의 믿음을 악용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세상과 등을 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을 교회가 돌보지 않고 오히려 세속문화를 역으로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이제 21세기의 현대교회는 세속문화를 분별하여 수용하고 예수님의 문화를 전파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속문화 속에서 선한 문화를 찾아내어 다음세대에게 교육하고 전승하되 악의 문화는 거절하고 끊어야 합니다. 세속문화의 옳고 그름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뜻을 좇아 이룰 수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말씀의 잣대를 대어 세속문화를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정신, 예수님이 행하셨던 삶을 선한 문화로 만들어 예수님의 문화가 세속사회에 보편화되도록 사역을 전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문화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문화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문화를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야 합니다. -CSJ-


Sunday, January 7, 2018

하나님이 내시는 길 2


하나님은 성도를 위해 광야에서 길을 내시고 사막에서 강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무질서하고 예비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길을 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모습과 현상을 보고 갈 길을 정할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어디로 갈지 결정권을 먼저 주었습니다. 롯은 물이 넉넉하고 마치 주님의 동산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이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는 주님의 동산과도 같았습니다. 풍요롭고 평화로와 보였지만 죄가 득실하고 타락한 성문화가 지배했던 멸망할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 사람의 판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쫓는다고 하지만 롯과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결정할 때 하나님이 내시는 길인지 분별하여 그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많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나의 정보와 판단에 근거해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이성적이 될 수 있겠지만 영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쉬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간헐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은 마치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서 잡음이 생기고 대화가 끊어지는 현상과도 같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확인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속적인 기도생활은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로 이루어집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서 성령님께서 함께 하심을 인정할 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결정을 습관과 경험과 지식에 의지해서 혼자 생각해서 하지 말고 성령님께 자세하게 문의하는 겁니다. 응답이 바로 바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인을 구하거나 징조를 기대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필요를 가장 잘 알고 계심을 인정하고 나의 판단과 결정이 성령님의 뜻에 맞기를 구하며 그저 의탁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섭리를 쫓아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곁에 있고 힘이 있으며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혹은 아내에게 자녀에게, 변호사에게 사장에게 미래를 의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지만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형통한 환경으로 바꾸십니다. 야곱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 에서를 다시 만날 때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시는 이가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께 매달려 축복을 구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축복해 줍니다. 야곱을 보는 형 에서의 마음이 부드럽게 변화되었습니다. 20년 넘게 쌓여던 증오의 관계가 해결된 겁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해결 안 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길을 냅니다. -CSJ-


Monday, January 1, 2018

하나님이 내시는 길

세겹줄 새벽기도회 때 함께 읽을 신앙서적이 하나님이 내시는 길입니다. 기도에 관한 폭넓은 이해와 실천이 베어 있는 책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꼭 같이 읽고 기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개인이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문제를 만납니다. 급하지만 정확하게 결정해야 할 부분이 항상 있습니다. 선택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경험에 의지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듣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겪는 일은 사전지식도 없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고 불안한 미래를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삶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오늘의 일을 계획해도 이루시는 이가 하나님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향방을 모르고 있는 순간에 나침반은 항상 한 곳을 지향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기도를 통해 성도는 나침반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나눠야 할 대화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의 습관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도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된 길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말씀으로 때로는 마음의 감동으로 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했을 때 믿음으로 실천하고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능력이 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붙잡고 영적 분별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정욕에 얽매여 사탄의 뜻을 쫓거나 숨은 계략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영적 분별력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믿음의 동역자들과 나누는 대화 가운데 생깁니다. 기도가 독선을 부르고 개인주의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사람들과의 단절을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동역자와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의 지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정이나 기분에 얽매여서 또는 인간관계를 의지하면서 기도하면 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지경이 넓혀져 가정에서 교회로 교회에서 사회로 더 나아가 조국과 땅끝까지 이르러 영혼을 구원하는 기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령에 의지해서 드릴 때 그 선한 뜻이 이루어집니다. 기도의 영을 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지 않으면 능력의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신앙의 순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죄는 기도를 가로막습니다. 불순종은 기도할 수 없도록 성도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듭니다. 순결함은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일이면서 육적인 일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고백이 행동으로 삶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기도의 생활을 통해 신앙의 교양과 예절을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리더십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함께 기도하며 찬양하며 경배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