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8, 2017

비즈니스 선교

선교학에서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영어의 첫 글자를 따서 BAM’이라고 쉽게 부릅니다. 선교로서의 사업, 직장을 가리킵니다. 사업과 직장을 선교활동 자체로 보는 겁니다. BAM과 비슷하게 최근에는 선교적 삶을 Life As Mission으로 써서 ‘LAM’이라고도 합니다. 선교가 멀리 있는 사역이 아니라 삶 자체가 곧 선교라는 의식입니다. 이런 선교를 통전적 선교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구원이 모두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한 신자가 영성 생활을 통해 정직하고 거룩하게 되어가는 구원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 참여하여 제도, 복지, 교육, 의료, 행정, 정치, 경제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회 구원의 여정도 필요합니다. 교회의 사역과 선교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통전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개인구원 사역이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제자화합니다. 사회구원 사역은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웁니다.
한 가정 안에서 남편이 일터에 가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아내는 집안을 돌보고 자녀를 양육합니다. 한 사람이 사회활동을 하려면 한 가족이 지지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는 가정활동과 사회활동이 동시에 만족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지지기반이 됩니다. 파송된 선교사가 있으려면 보내는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선교활동과 교회활동이 동시에 작동해야 합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입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온라인 비즈니스가 늘면서 사회활동과 가정활동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가정활동 안에서도 사회활동이 가능합니다. 원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사회활동이 가능한 문화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삶은 곧 선교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BAM은 매일 일하는 현장이 선교의 장소임을 깨닫습니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개인구원을 이루어야 할 전도대상자입니다. 일하면서 겪는 사회문제들은 정의와 공의로 세워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영역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가정과 일터와 혹은 교회와 일터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이 통전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영성을 훈련하며 지켜왔던 것처럼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영성을 세워야 합니다. 가정의 영성, 일터의 영성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얻은 영적 지혜와 지식이 모든 영성의 기초가 됩니다. 찬양과 경배가 영성의 선포가 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규칙적이고 넓고 깊은 영성 생활이 모든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일터에 갈 때마다 선교지로 간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세가 선교적 삶의 정신입니다. 비즈니스 선교의 시작이 바로 선교적 삶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정은 반드시 사회활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비즈니스에서 우리는 영성 생활을 이어가는 성도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갑질하는 폭군으로 살아갑니까. 직장이, 비즈니스 현장이 바로 선교지 입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전도대상자입니다. 그 현장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도록 함께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길 원합니다. -CSJ-


Monday, August 21, 2017

확신의 삶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어떤 확신에 근거해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충고합니다.(고후 10:7) 확신은 자신의 가치와 신분, 능력과 자격을 바로 인지하고 있을 때 생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확신이 생긴다고 가르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될 때 확신이 생깁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보고 디모데에게도 고난을 이겨낼 믿음이 있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누구의 품에서 자라고 누구와 함께 있는 지가 믿음을 돈독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휩쓸리게 되면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당부합니다.(벧후 3:17) 신실한 믿음의 친구, 이웃, 동역자들과 교제하며 좋은 영향력 아래에서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 믿음의 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 확신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게 바로 전도가 되고 선교가 됩니다. 확신은 진리에서 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고 정직하며 공평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믿으며 진리로 살아가려고 할 때 성도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을 마음 속에 충만하게 간직하고 있을 때 확신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 제자들은 흔들리고 불안했지만 성령이 임하게 되자 확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확신은 말씀과 성령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의 기원을 기억하고 더 깊고 넓은 믿음의 생활을 위해 규칙적이고 일관된 신앙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랄프 네이버 목사님은 매일 영적 성장 가이드라는 책에서 확신의 삶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서 시작된다고 밝힙니다. 예수님이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통치하실 때 인간은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확신의 삶을 위해서는 이 믿음 위에 확신 있게 서 있는 신앙인에게 지도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랄프 목사님은 일대일 양육을 통해 확신의 삶을 훈련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마음에 내재할 수 있는 지 배워야 합니다. 그 내재함을 확신했다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하나됨을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뜻하는 떡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는 성찬 의식을 통해 하나됨을 배우고 기념하고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예수님의 몸으로 비유했습니다. 성도의 공동체인 교회가 한 몸이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됩니다. 공동체 안의 나눔을 통해 확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합니다. 비신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소개하고 구원의 삶을 간증합니다. 그리고 함께 주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영원한 구원을 이루도록 한 몸의 지체가 됩니다. 그래서 확신의 삶은 생명과 섬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앞서 믿음으로 확신의 삶을 사는 신앙인에게 배워야 합니다. 가정교회는 확신의 삶을 삶 공부에 포함시켜 연약하여 흔들리기 쉬운 초신자를 일대일로 양육합니다. -CSJ-


Monday, August 14, 2017

여름 수련회를 기도하면서

예수님은 성도에게 쉼을 약속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면서 친히 안식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쉼은 영과 육체의 생활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영생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영적인 갈망뿐만 아니라 육체의 배고픔도 채워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닷가에서 밤을 새우며 이른 새벽까지 고기를 잡던 제자들을 위해 해변가에서 친히 고기를 구워 제자들의 조반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현대의 성도에게도 같은 쉼과 안식을 준비해 주십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생활의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삽니다. 일에서 오는 압박감, 미래의 불안감과 무능력함, 사람관계에서 오는 불신과 불확실성이 성도에게도 스트레스가 됩니다. 어떻게 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술이나 운동, 쇼핑은 이런 정신적 어려움을 푸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참된 쉼을 누려야 뿌리까지 완전하게 풀어집니다. 예수님의 쉼은 확실한 미래를 보장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미 천국의 생활을 약속 받았습니다. 천국의 생활을 지향하며 살 때 이 세상의 삶은 천국과 연결되는 쉼의 고리가 됩니다. 예수님의 쉼은 불완전하고 불신하는 환경과 사람을 확고하게 만듭니다. 환경과 사람의 마음은 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어 지체가 되면 비록 역할과 기능과 재능과 성품은 다를지라도 하나가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지만 회개하여 예수님의 몸을 이루어 교회를 세우는 능력의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떠나 스스로 죽음에 이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어 신앙의 공동체로 세워진 교회만이 영혼의 참 쉼터가 됩니다.
교회는 성공적인 일과 사역이 목적인 기관이 아니라 쉼과 안식을 제공하는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기획하신 영적 공동체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만 쉼을 찾을 때 얻게 됩니다. 오아시스로 가야 사막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영생에 이르는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올 때 이루어집니다. 참된 안식을 위해 주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다음 주일부터 교회의 여름 수련회가 열립니다. 모든 교인이 참석할 수 있는 여름 수련회가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쉼을 얻는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수련회라기 보다는 휴양회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사우스 빠드레에 있는 하우스에서 2박을 하면서 편하게 교제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아침시간에 찬양하고 큐티하고 낮 시간은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저녁시간에는 찬양하고 경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식사는 모두 함께 준비하려고 합니다. 아마 다음세대에게는 교회 식구들과 해변에서 보내는 좋은 추억의 시간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참석하는 교인들에게는 쉼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교회의 재정지원 없이 참석하는 분들의 회비로 충당됩니다. 다음세대들은 이번 수련회를 위해 펀드 레이징을 합니다. 교회 식구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러 지인들에게 과일세트를 판매해서 펀드를 만듭니다. 또 주일 헌금 특송 시간을 통해 특별헌금을 하려 합니다. 아무쪼록 성도님들의 많은 재정적인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CSJ-


Sunday, August 6, 2017

VIP에서 제자로

가정교회에서는 비신자를 VIP로 부릅니다. 가정교회사역은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사역입니다. 마태복음 2816-20절의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은 가서 제자를 삼고, 침례하고,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가라는 명령은 동적 명령입니다. 바울은 보내심을 받지 아니면 어찌 전파하리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요 함과 같다라고 격려합니다. 복음이 필요한 영혼에게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자들은 신자끼리 모여서 교회얘기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큐티방과 같은 모임이 신앙성숙을 위해 좋은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직장인, 주부, 남자, 여자 구분해서 모이는 소그룹 셀모임이 분명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교회의 목장은 부부가 남녀 비신자와 같이 모입니다. 그것은 대위임령의 현장이 바로 목장이기 때문입니다.
목장은 신앙성숙을 위해서만 모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목장은 비신자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삶의 얘기를 들으며 관계를 맺는 전도의 접촉점이 되는 현장입니다. 비신자들을 목장으로 초대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드려다 볼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목장은 먼저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의 가정을 비신자가 볼 수 있도록 합니다. 믿음이 생겨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은 실패하는 이유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하는데 가정에서는 아내를 구타하고 자녀를 저주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이유가 신실한 성도의 바른 가정생활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VIP는 목장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을 경험하고 교회로 옮겨옵니다. 침례는 교회생활을 시작하는 첫 단추가 됩니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고 예배생활과 헌금생활을 시작하면 교회의 회원으로서 인정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목장을 열어 다른 영혼들을 섬길 수 있도록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합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역은 목회자와 목자, 목녀가 감당해야 할 양육의 사역입니다.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장에서의 모임은 바로 말씀을 지키는 삶의 과정을 나누는 현장이 됩니다. 먼저 믿는 성도는 VIP에게 본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VIP를 가르칠 수 있도록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가르치고 지키는 신앙의 모습이 바로 선교의 원심적, 구심적 방법이 됩니다. 즉 선교는 안으로 들어오는 사역과 밖으로 나가는 사역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균형을 이룹니다. 목장이 바로 이 사역을 감당하는 소그룹 공동체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거절하자 길에서 만나는 사람을 초대하여 잔치에 데려오는 예화가 나옵니다. 전도는 VIP를 목장으로 초대하며 시작됩니다. 교회의 몸으로 세워지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VIP입니다. 초대하여 가르쳐 지키게 하는 목장사역을 통해 온전한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제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CSJ-


Wednesday, August 2, 2017

침례를 기대하며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기증해준 침례탕이 자리를 잡고 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영접 시간을 마친 4분이 침례 대상자입니다. 주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루어진 예수영접 시간이 다소 집중이 안되고 너무 짧다는 반성이 듭니다. 시간과 공간을 더 잘 활용하여 충분히 시간을 두고 분리된 공간에서 예수 영접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침례 대상자들은 4영리 교재를 이용하여 죄인된 인간을 조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고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영접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하고 교회의 지체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알려지고 다짐했습니다. 마치 에디오피아 환관이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인류의 죄를 위해 죽는 어린 양이 누구인지를 궁금해할 때 빌립 집사가 성령 하나님에 이끌리어 환관과 만나게 되었던 광경이 오버랩 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구원의 소식을 빌립이 가르칩니다. 그러자 에디오피아 환관은 지나는 길에 물가를 보게 되고 바로 침례받기를 간청합니다. 그렇게 환관은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의 주로 깨닫는 순간 바로 침례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가정교회 사역은 비신자가 침례 받아 교회의 지체로 세워지는 결과에 관심을 갖고 집중합니다. 숫자적으로 성장을 쫓는 여느 교회와는 구별되게 침례자가 늘어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비신자 영혼구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기존의 성도들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성도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어야 할 일꾼이요 동역자입니다. 불행하게도 기신자들이 여전히 교회의 돌봄 받기를 원하는 유아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장성하고 성숙한 신앙은 비신자를 전도하고 연약한 성도를 돌보는 성도입니다. 기존 성도가 누구에게 돌봄을 받을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을 한지 10,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남아 있다면 바울이 지적했던 것처럼 우유를 마시고 씹지 못하는 유아와 같습니다.
비신자들을 침례받게 하는 사역으로써 전도가 중요합니다. 전도를 위해 생업을 멈추고 전도에만 전념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생업을 해서 물질을 벌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물질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비신자들을 접촉하고 대화하고 들어주고 영적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잘 알고 있듯이 가정교회에서는 기도하고 있는 비신자를 VIP라고 부릅니다. VIP는 전도대상자이며 관계가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는 비신자입니다. 영혼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바로 전도의 시작입니다. 전도하기 위해 무엇을 하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그 영혼을 올려드리고 기도를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면 내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만남을 갖게 하시고 대화할 수 있게 하시고 감동을 끼칠 수 있도록 지식과 지혜를 주십니다. 전도는 혼자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교회 성도와 교역자가 같이 해야 합니다. 전도의 열매가 곧 침례입니다. 전도의 기도를 통해 날마다 침례받는 사람의 수가 더해져 가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