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사람과의 사랑을 가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도를 알고 있어도 상대방은 사랑과 동정 사이에서 분별하지 못하고 감정이 흘러가는 데로 마음을 정합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순수한 사랑과 목적을 둔 관계의 미묘한 차이를 영국의 한 가정을 통해 그립니다. 재력과 사교매너를 지닌 '오만한 남자' 다이시와 확고한 성격의 '편견있는 여자' 엘리자베스의 만남, 다툼 그리고 화해에 이르는 감정변화의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남이나 소문을 통해 들은 얘기에서 발생하는 오해가 편견을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사랑을 가로막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해를 풀고 편견을 제거하고 사랑에 이르는 과정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많은 오해에 직면합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 임의대로 해석하는 오만이 오해를 부르기도 합니다. 오해로 의로운 사람을 거슬러서 함부로 말하며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우리는 말, 행동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나쁜 동기가 깔려 있으면 대부분 오해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을 오해하게 되면 그 다음의 모든 관계는 정상적인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오만으로 인해 오해하는 순간 관계가 금이 가고 꼬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경우에 오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는 인간의 악한 오만이 더 위험한 것을 보게 됩니다.
오만하다는 것은 교만한 모습과 유사하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기질입니다. 잠언은 교만하고 건방진 사람을 오만한 자라고 합니다(잠 21:24). 오만한 자는 우쭐대며 무례하게 행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를 잘 내며 포학하고 허풍을 늘어논다고 설명합니다. 공동번역 로마서 12:16은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사람들과 사귀어 한 마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고린도후서 10:5에서는 하나님을 아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오만을 쳐부수고 어떠한 계략이든지 다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라고 명령합니다. 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계략을 꾸미며, 한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만한 사람을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사탄은 의로운 성도를 오만한 사람으로 몰고가 자기의 편으로 만들기도 하고 성도끼리 다투도록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예수님을 오만한 선동가, 불경한 이단자로 몰고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대의 전통과 율법을 거스르는 오만한 자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게 될 것이라는 이해계산에서 나온 악행이었습니다. 오만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그릇된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사역을 보니까 어떤 기적도 말씀도 모두 오만으로 여겨지게 된 겁니다. 그 그릇된 동기가 배신자 가롯 유다를 낳았고 결국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 사탄의 계획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구약의 말씀이 증거함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버립니다. 그리고 그 편견에 본디오 빌라도가 동조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못하는 오만이 세상에 편견을 심고 권력을 움직입니다. 성도는 분별력을 가지고 오만과 편견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C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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