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성령에 의해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따르지 않는 자의적인 기도는 여느 종교에서 하는 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기도는 성령과 함께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의 전부를 맡기고 간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는 특권이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에게서 나옵니다. 이 일은 로마서 8:15에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을 때 일어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우물쭈물하며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기도하는 권세입니다. 교회의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미래의 후사입니다.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성도 안에 거하실 때 하나님께 올려 드려지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말하기 위해 깊은 숨을 들이쉬듯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 내면세계를 주장하도록 해서 기도할 때 성령을 따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면 기도의 내용이 입술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내 안에 성령이 기도를 주관하시도록 맡겨드리면 성령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겁니다. 존 머리(John Murray)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비록 우리가 성령의 간구를 알아들을 수 없을지라도 분명한 의도와 취지가 담겨 있다....비록 우리의 언어와 인식을 초월할지라도 우리가 성령으로 지음 받고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분을 따를 수 있다.
진정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에 의한 기도는 영으로 하는 기도와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통전적으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영으로 하는 기도는 방언기도라고 말합니다(고전 14:14). 그런데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칼빈주의를 따르는 개혁교회 흔히 장로교는 말씀 교육의 지성주의를 강조하면서 은사종료주의를 주장하며 신약교회의 방언기도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성령의 은사로 방언기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방언의 기도가 과거 신약교회의 종료된 사건이 아니라 종말론적 은사로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기도의 한 방편임을 증거합니다. 분명 바울도 교회에서 방언을 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고전 14:39)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로버트 하이들러(Robert Heidler)는 방언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1) 우리의 영을 강건하게 해 주고 (2) 기도를 강력하게 하며 (3) 찬양이 강력해지고 (4) 원수마귀를 대적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준다고 합니다. 가정교회의 새벽 개인기도는 영으로 기도하는 시간으로 성령을 따라 영으로 기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도 기도하라고 당부합니다(고전 14:15).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공동체를 향한 기도로 지성을 이용하여 공동체가 동의하고 ‘아멘’하며 덕을 세우는 기도입니다. 가정교회는 세겹줄 기도로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통해 공동체를 견실하게 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