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31, 2016

가정교회의 기도사역 5

기도는 성령에 의해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따르지 않는 자의적인 기도는 여느 종교에서 하는 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기도는 성령과 함께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의 전부를 맡기고 간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는 특권이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에게서 나옵니다. 이 일은 로마서 8:15에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을 때 일어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우물쭈물하며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기도하는 권세입니다. 교회의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미래의 후사입니다.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성도 안에 거하실 때 하나님께 올려 드려지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말하기 위해 깊은 숨을 들이쉬듯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 내면세계를 주장하도록 해서 기도할 때 성령을 따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면 기도의 내용이 입술로 표현됩니다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내 안에 성령이 기도를 주관하시도록 맡겨드리면 성령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겁니다. 존 머리(John Murray)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비록 우리가 성령의 간구를 알아들을 수 없을지라도 분명한 의도와 취지가 담겨 있다....비록 우리의 언어와 인식을 초월할지라도 우리가 성령으로 지음 받고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분을 따를 수 있다.
진정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에 의한 기도는 영으로 하는 기도와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통전적으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영으로 하는 기도는 방언기도라고 말합니다(고전 14:14). 그런데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칼빈주의를 따르는 개혁교회 흔히 장로교는 말씀 교육의 지성주의를 강조하면서 은사종료주의를 주장하며 신약교회의 방언기도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성령의 은사로 방언기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방언의 기도가 과거 신약교회의 종료된 사건이 아니라 종말론적 은사로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기도의 한 방편임을 증거합니다. 분명 바울도 교회에서 방언을 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고전 14:39)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로버트 하이들러(Robert Heidler)는 방언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1) 우리의 영을 강건하게 해 주고 (2) 기도를 강력하게 하며 (3) 찬양이 강력해지고 (4) 원수마귀를 대적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준다고 합니다. 가정교회의 새벽 개인기도는 영으로 기도하는 시간으로 성령을 따라 영으로 기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도 기도하라고 당부합니다(고전 14:15).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공동체를 향한 기도로 지성을 이용하여 공동체가 동의하고 아멘하며 덕을 세우는 기도입니다가정교회는 세겹줄 기도로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통해 공동체를 견실하게 합니다. -CSJ-


가정교회의 기도사역 4

성도로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기도를 통해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믿음의 가정을 지키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가 성도의 삶 가운데 일어나게 하십니다.
구약시대 때 아브라함과 한나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아이를 나을 수 있도록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함으로 이삭의 배우자 리브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 재앙이 일어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엘리야와 솔로몬이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병이 회복되고 하나님은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생활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지켰습니다. 기도를 통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 뜻에 맞게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도의 삶은 영성의 삶을 이끕니다. 영성은 우리 자신의 내면세계를 주목하기 보다는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삶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 집중하여 그의 뜻을 깨닫고 이웃을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시드니 에반스(Sydney Evans)는 영성에 관계적 구조와 특성이 있음에 대하여 영성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과의 바른 관계성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성을 갖도록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둘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의 정도에 의존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의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인격을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도의 모양은 갖추고 시간적으로 분량은 채우지만 기도를 통해 자신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영성을 쌓으면 쌓을수록 성도의 인성은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닮고 싶은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가정교회의 사역은 기도의 성숙함으로 비신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선교적 사역을 감당합니다. 집을 열고 음식을 준비하며 섬기는데 그 안에서 기도의 능력이 드러나지 못하고 성숙한 인격이 나타나지 못하면 가정교회 사역은 실패합니다. 가정교회는 삶을 나누고 기도의 제목을 함께 나누고 위해서 중보기도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 지를 비신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의 중보기도는 간절합니다. 기도를 통해 한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함을 얻을 때까지 기도의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인내의 훈련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삶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기다리기 때문에 인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능력이란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가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전도의 길이 됩니다.  -CSJ-


Monday, October 17, 2016

가정교회의 기도사역 3

16세기 기독교 여성 영성가 중에 아빌라 테레사(Teresa of Avila)는 영적 여정을 음성기도로부터 묵상기도를 거쳐 관상기도로 발전되어간다고 했습니다. 유사하게 20세기 말 영성신학자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는 영적 여정을 구송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 무아경 기도 네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구송기도는 이성과 언어를 통해 기도하는 유형으로 기도문을 낭독 및 암송하면서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여인이 화장대의 삼면 거울을 이용하여 자신을 보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암송함으로써 자신을 들여다 보는 삼중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글로 기록된 기도문을 읽고 암송하고 노래 가사를 통해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송명희 시인의 기도 시 를 읽으며 나의 생각과 상황에 적용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묵상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형태의 기도입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예수님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하며 대화하듯이 기도하는 형태입니다. 흔히 묵상기도를 하며 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대화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기도제목을 쏟아 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무책임한 자세 때문에 발생합니다. 또한 묵상기도는 성경을 읽고 그 내용과 의미를 되새기고 삶에 적용하기 위해 되씹는 과정 즉 반추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냐시오(Ignatius)는 성경을 묵상함이 거룩한 삶을 여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즉 성경을 소리 내어 읽은 후 조용히 묵상함으로 마음과 가치관에 그 말씀이 스며들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작은 소리와 맑은 정신을 사용하여 성경 말씀을 예수님과 대화하듯이 나누는 되새김 기도입니다.
관상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은혜와 사랑에 이끌리어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마음의 기도입니다. 성도가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능동적인 관상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기도하도록 이끄셔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장소와 시간에 신비롭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생활 속에서 문득 하나님이 깊은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수동적 관상기도 입니다.
무아경 기도는 하나님이 성도의 기도를 주관하셔서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강권하는 기도입니다. 방언기도가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주관하심으로 이루어지는 무아경 기도는 통전적 영성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도의 형태로 제임스 휴스턴은 무아경 기도를 하나님과 나누는 우정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언급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가 균형 잡힌 통전적 영성 생활을 해야 합니다. -CSJ-


Tuesday, October 11, 2016

가정교회의 기도사역 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만나면서 영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영적인 생활이란 이 세상의 삶에 더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없어도 되었는데, 신앙을 가진 후에는 영적 생활을 하지 않으면 마치 어항을 튀어나온 금붕어와 같은 모습이 됩니다. 영적인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계 안에서 생활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리탱(Jacque Maritain)은 영적 생활을 인간영혼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회를 구성한다고 설명합니다무호랜드(Mulholland)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삶, 하나님을 통한 삶, 하나님을 위한 삶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주기도, 방언기도, 금식기도, 새벽기도, 통성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축복기도 등 많은 기도의 유형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새벽기도를 통해 기도로 하루를 여는 영적 생활을 기도사역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 전 30분 축복기도, 그리고 30분 말씀과 통성기도, 60분 중보기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중보기도는 다른 영혼의 축복을 기원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축복기도와 같습니다. 새벽예배 전에는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오늘의 말씀과 장래의 말씀을 받아 교회 공동체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 후 통성기도는 오늘의 맥체인 말씀에서 주신 깨달음과 결단을 위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예배 후 중보기도는 새벽예배 참석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기도제목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전교인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목장에서 보내주는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 더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다시 연구하며 실천하는 기도는 방언기도입니다. 제게 주신 성령의 여러 은사들을 정립하고 새롭게 날을 세울 수 있는 동력이 방언기도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방언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은사로서(고전 14:2) 방언을 통해 신앙이 돈독해지고(8:15; 고후 4:13) 영적 생활을 힘있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방언은 성령의 능력으로 열방들과 소통하게 하고(2:5-11),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되어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를 일으키고(2:12-36;고전 14:12), 방언을 행하는 자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해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은사로서 방언은 교회와 성도를 세우고, 약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강하고 능력 있는 삶으로 바꾸는 선물입니다. 교회에서 방언의 은사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균형 있게 세워가야 할 여러 성령의 은사 중 하나입니다.  
올바른 신앙은 반 이성적인 요소를 배격하면서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성령의 은사를 수용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요소입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초월적 은사를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정상적인 신앙은 하나님과의 수직관계에서 오는 초월성을 유지하면서 사람들과의 수평관계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분명 방언기도는 영적 생활에 큰 유익이 되고 성령의 충만을 이루는 지름길이 됩니다.  -CSJ-


Monday, October 3, 2016

통전적 교회로서 가정교회

통전적(holistic/wholistic)이란 용어는 전체적, 총체적, 포괄적이라는 용어와 유사한 개념으로 여러 요소를 모아 하나로 묶었을 때 각 구성요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특성이 나타남을 의미합니다(統)은 통합(integrity)하는 방법을 전(全)은 창조적 온전함(wholeness)에 이르는 결과를 가리킵니다.  심리학이나 의학분야에서는 전인치료, 전인건강, 통합의학, 대체의학으로 확대되고, 교육에서는 전인교육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는 통전적 신학, 통전적 영성, 통전적 세계관, 통전적 교회론, 통전적 신앙 등으로 연구되어 교회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통전적 교회는 교회 선교와 하나님의 선교를 하나로 보고 인간, 사회, 창조세계 전체를 구원하는 복음사역을 교회의 과제로 봅니다. 즉 교회는 영혼구원, 영적 성숙과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역을 통일성 있게 통전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전적 교회의 원형을 사도행전 246, 47절의 신약교회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신약교회 모습을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라고 묘사합니다. 통전적 교회는 세상사람들과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면서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결국에는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신약교회 성도들의 삶은 분명 세상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집집이 돌아가면서 음식을 먹는 성도의 모임입니다. 최근 한국 젊은이 중에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문화가 늘고 있습니다. 노인들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고독사가 청장년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문제를 어느 기관이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통전적 교회가 대안일 수 있습니다. 혼자 생활하는 삶을 거스르는 독특한 공동체 생활방식이 바로 통전적 교회인 신약교회에 있었습니다.
가정교회는 신약교회의 공동체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목회사역입니다. 가정교회의 소공동체인 목장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모여 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나 큐티나눔이 아닌 생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신자들을 저녁식사 모임에 초대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비신자를 VIP로 여기고 목장의 주인공이 비신자가 되고 그들의 관심이 이야기에 우선순위가 되도록 합니다. 집을 열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목장모임이 가능해집니다. 비신자들은 교회 공동체에 호감을 갖게 되고 이야기를 통해 복음을 듣게 되고 결국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교회의 지체가 되면 삶공부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밟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장을 만들어 다른 비신자를 섬길 수 있도록 리더인 목자로 세워집니다하나님 나라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사역을 통해 확장됩니다. 복음으로 구원받고 성숙해진 성도들이 각자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섬김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여 말씀으로 성숙하게 하여 사회를 변화시킴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통전적 사역을 진행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