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말을 하든지, 글로 쓰든지, 행동으로 표현 됩니다. 특별히 사람에게 말은 그 됨됨이와 인격을 반영합니다. 뿐만 아니라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낙심 시키는 일도 벌어집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의 중요성과 함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작은 키가 큰 배를 움직이는 것처럼 혀도 몸을 제어한다고 비유하면서 혀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최근 미셸 오바마 여사가 함부로 자신의 의사를 SNS에 남기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만약 글로 자신의 뜻을 표현할 거라면 문법과 형식을 갖춰 제대로 된 문장으로 남기라고 합니다. 한번 표출한 마음의 표현은 주워담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시편 141편의 저자는 입술의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입으로 표현되는 말이지만 말을 하고 안 하고는 자신이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잘 간수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상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 없지만 상한 감정의 표현으로 거친 말이 나오지 않도록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말의 실수를 줄이는 한 방법이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실수를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으로 성숙하게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말과 감정의 실수를 범하게 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하자 모세는 백성들을 반역한 무리라고 저주하며 분을 내어 반석을 두 번 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모습을 징계하셨습니다. 분을 품게 되면 실수하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가르칩니다. 감정이 상하고 분이 난다고 해서 바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오래 참고, 인내하며 절제하는 모습이 필요한데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때 성령 하나님이 나의 내면세계를 다스릴 수 있도록 의탁해야 합니다.
성내고 분노하는 마음은 상황과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깊게 넓게 생각하지 못할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일어날 결과를 내 생각으로 단정지을 때 생깁니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고 불완전합니다. 쉽게 바뀌기도 하고 정확 하지도 않습니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인관 관계를 생각하면 겸손하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되면 분노하는 마음이 들지 않고 동감이 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또 사람과의 관계는 결과적이기 보다는 과정적입니다. 지금 마음의 상태가 불안전하기 때문에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바뀌 지도 않고 더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를 기대해서 판단하면 분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누구나 연령이나 교육이나 직분에 관계없이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해를 갖고 서로에게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칠 때 말의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구원의 여정 가운데 성화되어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C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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