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4, 2017

할로윈&할렐루야 나이트

1031일은 할로윈(Halloween)입니다. 할로윈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정착된 풍습입니다. 이들은 111일을 새해의 첫날로 생각하고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1031일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약해져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고 정령이나 마녀가 출몰한다고 믿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혼령이 이 땅으로 나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몸을 빌려 거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승에서 올라온 악령들을 달래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곡식이나 동물을 제물을 바치기도 하고, 귀신처럼 분장하여 혼령들을 놀라게 하여 달아나도록 했습니다
9세기경 교황 그레고리 4세는 111일을 성자들(saints)을 기념하는 날 흔히 만성절이라고 부르는 날(All Hallows Day) 정하고 그 전날 1031일을 기독교 순교자들의 삶을 축하하는 날로 정해 할로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11세기에 가톨릭은 112일을 죽은 자들을 기념하는 모든 영혼의 날로 정하고 성인이나 천사나 악령들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행진을 벌이는 축제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념일이 멕시코에서는 111, 2일에 기념되는 망자의 날(Dia de Muertos)’이 되어 설탕, 초콜릿, 아만토 등으로 해골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며 1일에는 죽은 아이들을 2일에는 죽은 어른들을 위해 명복을 비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은 영혼, 악령을 달래고 성인을 숭배하는 사상이 혼합되어 오늘날과 같은 할로윈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성행하는 할로윈 문화는 일종의 귀신흉내내기 놀이로 비기독교적이며 반 성경적인 문화입니다. 무섭고 기괴한 복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면서 “Trick of Treat”(혼나지 않으려면 맛있는 것을 다오)을 외치며 음식을 달라고 하는 전통은 아일랜드 문화로부터 미국에 정착되었습니다. 호박을 사람 얼굴 모양으로 파서 만든 모형 이른바 등불 속의 잭(Jack-O-Lantern)’은 아일랜드의 전설 속에 나오는 이승과 저승을 방황하는 인물 잭(Jack)을 상징합니다. 이 모양이 집 앞에 있으면 악령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할로윈은 성인(saints)들을 기념하는 날로 유래가 되었지만 아일랜드의 전통문화와 정령문화가 혼합되면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성행하고 있습니다. 미주한인교회들은 할로윈 때 행해지는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피하고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이른바 할렐루야 나이트 행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할로윈을 귀신행사라든지 금지해야 할 반기독교 문화라고 정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시각은 이원론적이고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서양의 전통문화이지만 미주이민교회의 한인 성도가 누리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인식이었습니다. 할로윈 행사에 참여한다고 정죄하거나 귀신에 잡힌다는 등 세상과 분리되는 정서를 자녀에게 심어주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한인교회들은 이날에 가족이 함께 교회에 모여 식사와 다과를 나누고 영화를 본다든지 게임과 Craft활동을 합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캘리포니아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은 모든 도시에 있는 갈보리 채플 교회들이 할로윈을 다르게 지킬 것을 역설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화를 거룩한 문화로 재창조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CSJ-


Sunday, September 17, 2017

확신의 삶 공부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는 목회자가 삶 공부를 집중적으로 배우는 시간입니다. 이미 배우고 알고 있는 신학 지식을 가정교회 사역에 적용하여 잘 정착한 목사님들이 강의를 합니다. 이미 가정교회 사역을 15년 이상하면서 20개 이상의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가정교회의 목사님들이 지식뿐만 아니라 목장사역 중에 일어난 기적적인 간증과 함께 가르칩니다. 저는 지난번 컨퍼런스에서 달라스 예닮교회의 이우철 목사님에게 확신의 삶을 배웠습니다. ‘확신의 삶 공부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구원을 확실하게 이루어 성장해 가는 과정에 필요한 공부입니다.
모든 성도는 일생 동안 진행되는 구원의 여정을 밟습니다. 구원의 여정의 끝에는 이 세상에서는 성화이고, 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는 영화입니다. 그 때 성도는 영화로운 하나님의 처소에 들어가는 영광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도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추구합니다. 성화는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삶입니다.(4:13) 그리고 삶 속에서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입니다.(5:22, 23) 그리고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살전 1:6) 성화되는 삶을 위해서는 구원에 확실하게 거하는 확신의 삶이 필요합니다.
확신의 삶 공부는 우리 삶에 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각하도록 인도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항상 성도의 삶 속에 활동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맡겨드리는 자세입니다. 종종 성도는 그 마음 속에 임재하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성령님의 간구보다는 죄악의 본성대로 자신이 좋을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여 내 자아가 복종하도록 하면 성령님의 임재를 자각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확신의 삶공부는 우리 안에 두 가지 속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옛 속성과 새로운 속성입니다. 유전적으로 경험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옛 속성이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약한 점이 발견되면 옛 속성은 분출됩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가득 채워져 옛 속성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결박해야 합니다.
옛 속성은 세 가지 권위로 나타납니다.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겪어 왔던 인생의 경험이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전통이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 세 권위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지만 새로운 속성을 방해하는 능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의지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권위는 옛 속성을 붙잡게 하고 영원한 생명보다는 이 땅에 소망을 갖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확신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면서 믿지 못하는 비신자의 영혼을 안타깝게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삶을 간증하여 복음을 증거할 때 이루어 집니다. -CSJ-


Sunday, September 10, 2017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

현대교회는 각 공동체에 맞는 조직을 갖고 여러 가지 사역을 진행합니다. 흔히 말하는 전통적 교회는 예배를 사역의 중심으로 보고 예배에 집중함으로써 성도의 영성을 함양합니다.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예배를 통해 전도가 이루어지게 합니다. 열릴 예배를 통해 특별집회, 연극공연 등 비신자들을 초대하여 복음을 소개하고 예배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신앙 공동체 안에 들어오게 하고 교회의 멤버가 되도록 이끕니다.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통해 제자가 되도록 하고 교회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합니다.
21세기 교회는 소그룹 목회를 추구합니다. 개인화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획일적인 예배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적인 필요를 소그룹을 통해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소그룹을 전통교회에서는 구역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구역의 개념과는 다르게 다락방, , 사랑방, , 목장 등이라고 부릅니다. 전통교회의 구역은 교회의 한 작은 소그룹으로 대 조직 안에 있는 소 조직이었지만 소그룹 운동에서의 작은 모임은 그 모임이 또 하나의 작은 교회라는 개념이 강합니다. 이를 셀교회 혹은 우리 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가정교회라고 합니다. 전통교회의 구역모임에는 비신자가 바로 참석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새신자 과정을 마쳤거나 어느 정도 교회생활을 하고 소정의 과정을 마쳐야 구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비신자가 교회 예배에 초대된 후 구역으로 배치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전통교회의 전도는 보통 주일예배로 비신자를 초대함으로 일어납니다.
셀교회나 가정교회는 좀 다릅니다. 소그룹 모임에 비신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비신자는 예배 전에 소그룹을 경험합니다. 셀교회와 마찬가지로 가정교회의 목장은 분가를 통해 작은 모임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12명이 넘어서면 분가를 하도록 권합니다. 하지만 셀교회는 꼭 가정단위로 모이지는 않습니다. 지역적으로 연령별로 성별로 혹은 기능적으로 모이는 다양한 셀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교회의 목장은 다른 구별 없이 가정단위로 모이고 비신자가 초대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목원들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있을 때 특별한 직업군이나 연령층이 더 많이 모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구별해서 목장을 나누거나 차별화하지는 않습니다. 가정교회는 추구하는 목적 자체가 목장을 통한 영혼구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정교회 사역을 하는 교회는 전통교회이면서도 교단을 초월해 연합성이 강합니다. 영혼구원의 가치는 신약교회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사역을 하는 교회의 목회자는 일년에 두 번 컨퍼런스에 참여합니다. 가정교회는 영혼구원에 집중하는 목장사역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컨퍼런스에는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이 모여 사례 발표를 하고 삶공부에 관한 강의를 듣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크기에 맞는 다른 교회의 사역 모습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 정신이 영혼구원에 힘쓰는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기 때문에 교회의 크기에 관계없이 많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달라스 예닮교회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CSJ-


Monday, September 4, 2017

재난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

허리캐인 하비로 휴스턴이 최악의 재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많은 한인들의 생업의 현장이 물에 잠기고 치안의 공백을 틈타 약탈을 당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현대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는 어느 정도 예보할 수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해를 당하게 됩니다. 재난의 상황을 잘 극복하고 회복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재난을 대하는 성도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성경은 재난을 재앙이나 환난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고난이나 고통과 뜻을 같이 합니다. 혹자는 이원론적으로 악마가 재난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죄의 결과로 재난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이 말은 반만 맞습니다. 노아 때 인간의 죄의 결과로 재난이 일어난 사건이 성경에 나와있지만 성경은 이원론적으로만 재난을 보지 않습니다. 재난을 통해 의인을 깨닫게 하시고 구속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재난이 발생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연을 운행하십니다. 재난도 자연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선과 악을 함께 두셔서 공존하도록 하셨습니다.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는 인간이 무분별하게 이익을 위해 개발과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 생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족함으로 발생한 재난일지라도 그 일을 선하시게 이끄셔서 회복하게 하시고 구원의 역사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함으로 재난을 허락하시지만 재난의 결과는 심판이 아니라 회복이고 생명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셔서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 재난을 통해 깨닫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재난으로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신앙을 저버린 이들은 하나님이 재난의 이유라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는 재난이 인간의 죄의 결과라고 말하여 재난 당한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하나님은 재난을 허락하시지만 재난을 통해 사람들이 슬퍼하며 아파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재난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의 계획과 회복과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돕고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복음을 증거하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은 재난을 겪고 난 후의 성도의 반응을 기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재난의 원인과 이유를 규명하여 예측하고 준비하는 일은 정부기관 부처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는 재난을 당한 영혼들을 선한 사마리아인이 행했던 것처럼 돕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재난의 현장 휴스턴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침수를 당한 교회와 성도의 가정을 도울 수 있다면 주님의 몸으로 연합된 지체를 섬기는 기회가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을 당해 고통 당할 때 안디옥 교회는 기꺼이 헌금하여 도왔습니다. 휴스턴에 있는 침례교회의 여러 목사님들과 성도가 침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다음 주 특별헌금과 매칭 성금을 통해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고 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