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30, 2016

성경통독과 나눔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우리의 사고의 틀인 세계관이 점차 변화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선한 것을 쌓아두면 선한 것이 나와야 합니다.(12:35) 어떻게 하면 성경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와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이 경험한 사건들을 함께 목장에서 나눔으로써 말씀의 적용을 보다 현실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현재의 나를 진단하고 깨닫고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실행한 부분이 있으면 목장에서 함께 나눔으로써 말씀의 경험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생업의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여러 사건 속에서 지낼 때에는 순간 순간이 말씀을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이런 성도들에게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구절을 다 외우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몇 단어를 사용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면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제목, 은혜의 역사,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위로,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음성, 찬양의 권능, 성령의 충만 등 다소 추상적인 적용이 될 수 있지만 이와 관련된 말씀이 실제로 성도의 생활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새겨둔 성경말씀이 있을 때 모든 순간에 말씀을 기억 밖으로 끄집어내어 마음과 생각과 행동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는 가족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이끌지 지혜를 줍니다. 시편은 환경이 고달프고 마음이 힘들 때 공감을 일으키는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잠언과 전도서의 말씀은 지혜롭게 결정하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윤리와 도덕을 초월한 지혜의 삶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 삶의 태도와 인생의 목적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는 인생의 무게중심을 믿음으로 잡아줍니다. 요한계시록은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는 영적 보호막을 제시합니다.
일주일의 삶이 단조롭고 특별한 사건이 없다고 생각될 때 나눔이 어렵게 인식됩니다. 제가 연구원으로 일했던 삶이 그랬습니다. 온종일 책과 논문에 쌓여서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상상하며 연구하다 보면 어느 때는 탄소와 철의 상관관계 밖에는 머리 속에 남아있질 않습니다. 일반인들과 특별히 나눌 수 있는 주제나 소재가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같은 사건, 같은 일상을 나누는 것이 부질없다고 느끼게 되고 목장에 가서 나누는 것이 쉽지 않게 되면서 저 스스로 깊은 권태감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가볍게 성경을 통독하기로 했습니다. 그림성경책으로 성경의 내용을 훑고 만화로 된 신학책을 보고 쉬운 성경책으로 통독을 틈나는 데로 했습니다. 제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소재는 없었지만 성경 이야기가 제 나눔의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되었습니다. 잠깐 산책하면서 운전하면서 성경통독의 내용을 되새기며 나눔의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새벽예배 이후 온종일을 교회 사무실에서 신앙서적과 신학논문을 읽으며 연구하고 집필하며 설교를 준비합니다심방이 아니면 만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생각하면 나누고 싶은 말이 너무 많습니다. -CSJ-


Monday, August 22, 2016

성경적 세계관과 미래 2

세계관은 학습을 통해서 이루어지거나 성장과정에서 경험된 사건을 통해 무의식 중에 형성됩니다. 지식과 경험이 이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판단되면서 사고의 틀이 생기면 이것이 세계관이 됩니다. 세계관은 철학이나 과학처럼 지적이고 논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념처럼 의지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감정적이지도 않습니다. 또 신앙처럼 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도 아니지만 지정의를 갖는 인격형성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른 세계관이 있어야 일관성과 통일성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고 생동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른 세계관이 사고와 행동을 옳은 방향으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진리를 상대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현대인에게 무엇이 옳은 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분명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절대적 진리를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이익이 우선하고 속해 있는 공동체의 번영이 진리를 대신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른 세계관에 대한 정의가 상대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현대인은 사고의 혼돈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대생활에서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용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은 이기심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의 가치관은 이 땅의 세계관과 비교하면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대라는 사랑의 명령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공동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계관입니다. 이 땅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세워질 수 없는 세계관을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 땅에 보여주셨습니다.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의 세계관을 보여주시고 실천하시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세계관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율법사들은 예수님의 세계관을 거절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생각과 이념을 뽑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구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세계관의 단편은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을 순종하고 사랑하면 하나님이 생명의 복된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겁니다. 출애굽을 한 후 40년 광야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에서 갖게 된 세계관과 우상을 섬기는 세계관을 끊어버리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이 잘못된 세계관을 끊어버리지 못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바른 하나님의 세계관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민족의 지도자가 됩니다. 잘못된 세계관을 바꾸기란 이토록 어렵습니다. 신앙의 1세대의 세계관이 바뀌어야 다음 세대가 신앙 안에서 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독하고 정독하고 암송하고 성경일기를 쓰면서 노력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세계관을 우리 몸과 마음에 담기 위해서 입니다. 옛 생활의 구습과 잘못된 세계관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으로 다시 세워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CSJ-


Monday, August 15, 2016

성경적 세계관과 미래 1

성경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세계관의 변화입니다. 세계관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통일된 생각을 말합니다. 우주의 탄생과 종말에 대해, 자연과 환경에 대해, 사회와 국가에 대해, 역사와 미래에 대해, 문명과 문화에 대해, 가족과 이웃에 대해, 인물과 인격에 대한 관념이 세계관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 시선으로 본 이 세계에 대한 생각을 성경적 세계관(biblical worldview)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우주의 탄생과 인류의 기원은 과학의 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사사기, 역대상하, 열왕기상하에 나타난 지도자들의 사건 속에서 얻는 지혜는 정치와 역사의 결론이 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게 합니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법과 규례의 보고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가정과 개인의 스토리는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의 주제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종말을 향해가는 인생의 고민에 대해 전도서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모든 주제가 다루어져 있고 그 정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발견하여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바로 성경적 세계관이 세워져야 합니다.
먼저 성경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고 창조를 믿게 되는 것이 성경적 세계관의 시작입니다. 육체와 영혼을 갖춘 하나님 형상을 닮은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람을 위해 자연을 먼저 준비하셨음을 믿는 것이 성경적 세계관의 기초입니다. 즉 존재의 시작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성경적 세계관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하게 신뢰하면 미래의 자손에 걸쳐 확실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환경과 상황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살아갑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이 세계와 현재의 인생을 바라볼 때 갖는 첫 번째 반응은 창조에 대한 감사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삶을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는 으로 대표됩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돈이 될 수 있는 물질과 환경을 만드는 겁니다. 돈을 소유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찾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합니다. 생활하고 남은 돈으로 보석, 건물, , 주식 등을 보유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합니다. 때로는 든든하고 가치 있는 제도와 조직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미래를 보장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내가 나의 미래를 책임지고 준비해야 합니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길은 보험과 돈 같은 물질적인 것 밖에는 없습니다. 반면 성경적 세계관은 하나님이 나의 미래를 보장하심을 믿습니다. 현대인과 똑같이 저축도 하고, 부동산도 소유하고, 제도 안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원하지 않는 질병, 사건, 사고는 하나님이 깨닫도록 허락하시는 은혜의 방편이라고 믿습니다. 미래는 불안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계획임을 믿게 됩니다.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성경적 세계관을 갖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CSJ-


미래세대를 위한 성경말씀 3

우리가 모든 면에서 자라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에게까지 다다르는 것(4:15)은 성숙한 신앙의 목표가 됩니다. 특별히 인격적으로 미성숙하고 가치관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 시기에는 더욱더 중요합니다. 십대에게 성경말씀을 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나가는 이상의 큰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십대 시기에는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멘토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성품을 닮고 싶은 사람, 원하는 직업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 배우자로서 이상형, 친구들과 좋은 우정을 유지하는 사람, 신앙생활의 모델로서 적어도 다섯 가지 분야에서 멘토를 마음으로 정하고 종합적으로 본받는 것이 좋습니다. 멘토는 바뀔 수도 있고 직접 만난 사람이 아니라 책을 통해 멘토의 생각과 습관, 태도, 열정 등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청소년들은 성경인물 속에서 이런 멘토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성경 속 상황과 현재의 삶이 시대적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성경인물을 멘토로 삼았다고 해도 실생활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물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나타나기 때문에 청소년 스스로가 성경인물 속에서 교훈을 찾기란 여간 해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래세대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교회가 함께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숙한 교사가 말씀을 가르쳐야 하고 대화를 통해서 배울 점들을 찾고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잘 이해가 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을 적고 암송하고 기억함으로써 삶에 이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경 속 상황이 이해가 안되고 어려운 부분은 쉬운 성경본을 읽고 본다든지 주석을 읽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당장 참고서적을 확인할 수 없으면 노트나 성경의 빈 공간에 메모를 남겨두어 다음에 읽을 때는 이해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2,000년 가까이 읽혀지고 신학적으로 연구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대부분 이미 논의가 되었고 거의 해결이 된 사항입니다. 언제고 참고서적을 사용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볼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루함과 의혹으로 성경읽기를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원리를 훈련시키면 좋습니다. 먼저 좋아하는 구절, 단어를 메모하게 하고 계속 보고 암송하도록 하여 삶에 적용하도록 권면합니다. 성경은 지루하고 이상하고 비합리적이고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쌓이게 되면 성경읽기를 포기할 뿐 아니라 신앙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에게 삶의 모범임을 알려주고 예수님이 현재오시면 어떻게 사셨을까 상상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페이스북을 하신다면 어떤 친구로 보이실지, 예수님이 유튜브를 본다면 어떤 영상을 즐겨보셨을 지, 예수님이 트윗터에 글을 남기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예수님이 컴퓨터 공학자가 된다면, 예수님이 의사라면….이렇게 성경말씀을 인격화할 때 온전한 멘토를 만나고 건강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CSJ-


Monday, August 1, 2016

미래세대를 위한 성경말씀 2

종교개혁은 루터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000년 동안 유지해온 중세의 종교관, 세계관이 루터 한 사람이 성경을 바로 읽고 행동함으로 개혁이 일어났던 겁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서나 종교서적이나 율법전서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온 인류 구원역사를 위한 모판으로 삼아 이스라엘의 여호와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역의 완성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교회에게 바통이 넘겨졌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창조부터 종말까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담은 기록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바로 읽고 깨닫게 될 때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성경말씀의 핵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구원받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약속으로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다른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 구원의 사명을 부여 받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사역은 성경과의 올바른 만남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고 확장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가치와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을 이 땅에 심는 데서 시작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바로 정립하는 것 그리고 이 세계관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주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을 읽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은 일반서적같이 혼자 읽는다고 해서 깨달아지는 서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반영한 역사이며 교훈인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성경을 읽어도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질투의 하나님, 잔혹한 하나님, 독불장군 같은 하나님, 이기적인 하나님으로 이해하기 십상입니다.
성경은 신실한 신앙 선배에게 들으면서 배우면서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건전한 신학이 뒷받침되어야 교회와 현대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대학에서 읽으면 교과서가 되고, 성경을 절에서 읽으면 타종교 참고문헌이 되고, 성경을 유교에서 읽으면 서양의 지혜서가 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신앙 공동체의 지체가 되어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교회를 떠난 성경읽기는 독자의 목적에 맞게 적용되어 구원의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며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개혁하고 시대를 깨우려면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읽어야 합니다성경을 읽는 것이 과연 우리의 세계관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텍산(Texsan)이라면 잘 알고 있는 침례교 배경의 베일러(Baylor) 대학에서 성경읽기가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사회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성경을 자주 읽는 사람은 사회적 경제적 정의가 더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성경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은 낙태, 동성결혼을 인정하지만 성경을 자주 읽는 사람들은 반대합니다. 이처럼 성경읽기는 세계관에 영향을 줍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