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8, 2016

성경통독이 주는 나눔 3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방해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종교적 생활과 율법에 빠지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도 신앙적 우월감을 갖도록 하는 겁니다. 종교주의와 율법주의는 영적 교만을 심어주어 종교적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종교적 우상에 빠져있는 교만한 종교인들을 저주하시고 종교인에게 버림받은 겸손한 신앙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율법과 전통 어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잡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이상이 여기고(11:38)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하는데 금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냐고 불평합니다(5:30). 왜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냐고 따집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율법과 전통에 어긋난다고 고발합니다(6:7). 종교인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 말씀의 생명력은 못보고 종교적 의식과 율법, 전통으로 굳어진 죽은 말씀을 이용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의 기도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겸손한 사람임을 가르칩니다(18:9-14). 이 바리새파 사람은 혼자 말로 자신은 남의 것을 빼앗는 자, 불의한 자, 간음한 자, 또한 세리 같지 않다고 밝히며 일주일에 두 번씩 기도하고 십일조를 바친다고 자랑합니다. 반면에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인정한 사람은 바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춘 세리였습니다.
종교주의와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새인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혼자 말로 기도합니다. 성경을 날마다 읽고 수시로 암송했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의를 세우는 종교적 명령으로만 수행했던 겁니다. 현대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종교적인 습관과 형식으로 읽기 쉽습니다. 마치 혼자 말하는 것처럼 그저 읽고 기억도 하지만 마음에 두고 삶에 적용하는 생명의 운동력은 없습니다예수님은 이런 종교적 생활을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11:39)라고 가르칩니다.
성경통독은 몇 번 읽었는지를 계수해서 신앙의 등급을 따지는 잣대가 아닙니다. 1,000번 성경을 읽어도 그 말씀이 우리의 속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면 생명은 없고 형상만 남아있는 굳어진 화석과 같습니다. 성경통독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통으로 읽음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을 전인적으로 갖춰나가는 특별한 영적 훈련입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성경읽기는 충만한 사람을 만들고 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과 깨달음을 자신의 글로 표현하여 적어두는 영성 습관은 성경통독의 유익을 더 깊게 체험하게 합니다. 아울러 혼잣말이 아니라 목장 안에서 나눌 때 함께 말씀의 충만한 은혜를 공유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면서 사역하셨습니다. -CSJ-


Thursday, June 23, 2016

성경통독이 주는 나눔 2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누는 수다가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수다(chattering, small talk)는 남의 사생활을 흥미로만 말하는 험담이 섞인 가십(gossip)과는 다릅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수다에는 남녀의 차이가 거의 없고 단지 개인 차이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남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편하게 말한다고 합니다. 모임 중에 있을 때 말이 끊기면 서로 어색함을 느끼게 됩니다. 적당한 수다는 모임을 부드럽게 만들고 유익한 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 전단계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를 아이스브레잌이킹(icebreaking)이라고 합니다. 서먹함을 깨고 풍성한 대화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수다에 무엇을 담아 나눌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날씨, 스포츠, 연예 같은 가벼운 소재가 좋을 수 있습니다. 흔히 실없다고 느낄 수 있는 이런 수다가 모임의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듭니다. 수다를 떤다고 표현할 때 수다의 내용에 관계없이 태도가 경박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고 목장모임에서 스포츠 얘기나 연예 얘기를 꺼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 소재가 어떻게 나눠지는 것이 좋을까요? 저는 성경통독이 좋은 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을 통독하게 되면 거룩한 많은 이야기 거리가 생깁니다. 우리는 말씀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영성생활을 합니다. 새벽기도에 나올 수 있습니다. 큐티하는 생활은 하루의 일부를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이끌어 말씀을 삶에 실천하도록 도전합니다. 영성일기는 24시간 하나님과 호흡하는 관계를 목표로 합니다. 매주일 모이는 목장모임에서 영성 나눔을 통해 깨닫고 결단한 말씀을 나누고 생활에 적용한 사례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영성일기의 한 부분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나눔은 만나자마자 선뜻 꺼내기에는 진지하고 때로는 무거운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반면 성경통독을 하게 되면 성경 이야기를 경박하지 않으면서 진솔하게 아이스브레이킹 하면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거나 짤막한 성경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치 수다를 떨듯이 성경통독에 관한 이야기로 첫만남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 이야기는 다양한 사건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쉽게 나누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나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수다 떨듯이 가볍게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주는 느낌을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수다를 통해 나눔으로써 나의 느낌을 전달하면 대화의 소재를 성경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주제와 소재로 수다를 떨고 대화를 채워갑니다. 성경은 문화 콘텐츠가 요구하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성경통독은 자칫 놓치기 쉬운 신앙의 수다를 통해 재미있고 풍성하면서 건강하고 바르며 창조적인 영성대화를 이끌어 가게 합니다. 성경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체득하고 성경의 세계관을 내 세계관으로 정립하여 나오는 수다는 대화를 풍요롭게 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목장의 나눔을 만들어줍니다.   -CSJ-


Monday, June 13, 2016

성경통독이 주는 나눔

우리는 스마트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문화로 형성된 문화의 이기가 가까이 오면서 손쉽게 방송, 문화 매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문화 생활을 손 안에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여 보고 듣는 것으로 문화를 누리지만 몇 년만 지나면 가상체험 기기를 이용하여 실제로 레저 스포츠를 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한 문화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흔히 문화 콘텐츠(Culture Contents)는 영상미디어나 디지털 미디어와 같은 뉴 미디어를 통해 향유되는 문화예술의 내용물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영화, 게임, 음악, 만화, 드라마, 엔터테인먼트, 패션 등 거의 모든 것들이 문화 콘텐츠를 필요로 합니다. 스마트 기기가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문화를 누리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필요가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국가 경쟁력을 위해 정책적으로 문화 콘텐츠를 개발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는 사람이 창조적으로 개발한 산출물이기 때문에 스토리를 작성하는 사람들은 다양하고 독특한 경험과 철학이 필요하고 사건을 재구성하고 스토리를 작성하는 창의력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문화 콘텐츠를 준비하는 사람은 언어표현에 능숙하도록 읽기와 글쓰기가 기본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이 풍부해야 합니다. 인문학과 과학을 융합하여 창조적인 사고와 사건을 구성하는 능력과 표현하는 능력이 함께 겸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편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제공되기 위해서는 윤리적 비판이 필요합니다. 작가나 제작자가 반인류적인 사고로 스토리를 작성하고 미디어를 제작했다면 그 문화 콘텐츠는 테러와 범죄, 타락한 문화를 부축이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은 건전한 문화 콘텐츠를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판단기준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뿌리가 되는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창조부터 심판까지 숨김없이 보여주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분명한 잣대를 제공합니다. 복음적인 생명의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신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문화 콘텐츠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노력이 신학자와 목회자에게 필요합니다. 아울러 매주일 성도들은 교회에 모여서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문화 콘텐츠를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현대교회는 시대의 흐름과 문화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시각과 관점을 제공하는 문화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독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하고 거룩한 문화 콘텐츠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생각을 반영하면 훌륭한 문화 콘텐츠가 됩니다. 육아, 자녀교육, 남편과 아내의 갈등해소, 요리, 혼자 있는 시간, 건강관리 등 일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성경통독을 통해 얻은 하나님의 생각을 부여하여 자신이 겪고 있는 생활을 재구성하면 독특한 일상의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에게 생명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CSJ-


Tuesday, June 7, 2016

도전 90일 성경통독


큐티나 책별, 주제별 성경연구가 나무와 꽃을 보는 근시적 성경읽기라면, 성경통독은 숲과 정원을 보는 원시적 성경읽기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교인들은 주일 설교에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이런 교인들은 종교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자훈련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을 깊게 연구하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 닮아가는 신앙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4차원적으로 깊게 넓게 일정기간에 걸쳐 읽고 삶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6,000년 인류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개인신앙고백, 가족 신앙의 언약과 기업, 민족과 하나님의 언약, 인류와 하나님의 섭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역사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정의(intellect, emotion, will) 를 가지고 있는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성경말씀을 편협적이고 타의에 의해 제공받는 진리로 제한하지 않고 스스로 성령의 조명과 깨달음을 통해 성경말씀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지정의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성경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삼기 위해서는 나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전체를 통해 나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시고 이끄셨는지를 봐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나의 재능과 자질, 은사 및 인생설계를 성품&성격테스트와 적성&심리검사를 통해 이해합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정립된 과학이론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만, 나를 창조하시고 나의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생설계를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어떤 이들은 소설,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연예, 영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완전한 자기이해는 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뜻을 발견하는 것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의 인생을 축복하시고 심판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맞는 인생을 설계하시고 가장 좋은 인생의 복, 영혼의 복으로 우리를 채워주시기 원하십니다. 가정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하고 잘 사는 가정인가를 우리는 TV상담 프로그램과 드라마 혹은 도서를 통해 배웁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 속에 가정의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원리를 밝혀놓으셨습니다. 한 가정을 통해 어떻게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지를 성경통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통독은 한 번으로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삶의 가치관,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싶을 때마다 성경통독을 하면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통독할 때에는 장과 절에 매이지 말고 한 통으로 읽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교훈이나 훈계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격을 봐야 합니다.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하기 보다는 성령의 감동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의 안경을 끼고 읽으면서 성경의 현장에 나를 참여시켜야 합니다. 문단을 통째로 읽으면서 줄거리를 따라가면 하나님의 이끄시는 대로를 보게 될 것입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