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율법의 관계는 개혁주의 신학에 의해 잘 이론화 되었다. 우리는 복음과 율법이 모두 필요하다. 율법은 사람들이 제정한 세상의 법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 하나님의 속성과 구원과 영생에 대해 가르친다. 분명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 율법도 말씀으로 주셨고 신약성경을 통해 복음도 함께 성도들에게 주셨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실 자임을, 마지막 때에 심판자임을 증거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와 성도의 생활에 대해 이스라엘 역사와 제사규범을 통해 현재의 성도에게 말씀하신다. 신약은 예수님이 선포한 말씀과, 생애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역사와, 교회의 시작과 교회의 역할, 교회의 의미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리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통해 선교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말씀은 성도와 교회와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 합당한 모든 가르침을 준다. 율법과 복음 모두가 말씀 중에 드러나 있다.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율법은 그 생명을 성장 성숙하게 만든다. 복음과 율법은 온전한 성도를 만들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그런데 완전한 이 말씀을 편협하게 이용하는 사탄의 전략을 우리가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첫째는 율법만을 강조하는 율법주의, 둘째는 복음만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이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정죄하게 되고 신비주의에 빠지면 상식과 인격을 잃어버리고 만다. 사탄은 신실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율법주의에 빠지게 한다. 율법은 거울과 같다. 나를 말씀에 비추어 보고 부족한 점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율법은 제 기능을 다 한다.
그런데 이 율법의 거울을 다른 사람에게 비출 때 문제가 된다. 거울의 반사되는 빛은 눈을 부시게 만들고 사람을 무능력하게 만든다. 율법은 세상 법처럼 죄를 정죄하고 처벌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다.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회복하도록 주셨다. 율법은 사람을 옥죄는 굴레가 아니라 걸치고 밖으로 나아가 자유롭게 하는 옷이다. 복음으로 탄생한 영혼이 율법으로 갖추어질 때 온전한 인격체가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장성한 분량의 성도가 된다. 사탄은 율법을 이용하여 성도를 정죄한다. 성도들끼리 서로 율법을 근거로 싸움하도록 미혹한다. 성경말씀을 인용해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고 자기 주장을 합리화시키는 태도는 사탄이 원하는 작전이다. 율법으로 정죄함은 복음으로 탄생한 영혼을 연자 맷돌을 달아 깊은 물속에 빠트리는 행위이다.
복음은 생명을 잉태한다. 복음이 없으면 죽어가는 비신자들을 구원할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복음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믿음의 선진들은 이 복음을 증거하며 전파하기 위해 십자가의 삶을 살았다. 복음 없는 율법은 생명 없이 존재하는 인공지능의 로봇과 같다. 우수한 사고능력을 갖고 정교하게 동작하는 기능을 갖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고난도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로봇은 사물이다. 복음 없이 살아가는 삶이 윤택하고 풍성하게 보여도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없다. 어느 날 전원이 꺼져 동력이 끊기면 로봇은 재활용품이 된다. 복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께 영원한 동력을 공급받는다. -C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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