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인생들을 만나기 위해서 친히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많지만 그 결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만남을 가지면 영원한 삶을 얻게 되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면 사탄의 권세아래 그냥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만남은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변화고 악인이 선인으로 바뀌게 됩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예수님과의 만남은 보통사람들과의 만남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만남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고 연약한 마음을 든든하게 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확고하게 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끼리의 만남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한 성도를 만났을 때 건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죽은 만남입니다. 더 나쁜 경우는 만날수록 내 육체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만남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보내기도 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경우는 대부분 잘못된 만남 때문에 생깁니다. 목회자를 잘못 만나고 성도를 잘못 만났을 때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내가 변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경건한 목회자를 만나고 친밀하고 신뢰할만한 성도들을 만나도 내가 건강하게 변화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만났을 때 거듭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처럼 신뢰의 동역자를 만났을 때 구원의 긴 여정을 함께 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일회성 만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일평생 예수님과 끊임없이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동역자와 많은 만남을 갖고 깊은 대화와 나눔을 통해 서로를 지탱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 닮아가는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하나님은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고 건강한 변화가 일어난 후 공동체를 떠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여전히 복음을 모르고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있습니다. 복음은 알아도 헌신되지 못한 연약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늘 도전합니다. 든든히 서서 저 영혼들에게 가라고 명령합니다. 그 때 교회 공동체는 믿음의 동역자를 ’파송’하게 됩니다. 파송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순종하는 믿음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정착해서 잘 지내고 있는 현재 상황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낯선 상황들을 직면해야 하는 파송은 분명 누구에게나 힘들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파송하고 파송받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누가 파송을 받을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본인만 알 수 있는 소명의 부름심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여건이 파송될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원해서 파송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파송은 공간적으로 떨어짐이고 이별입니다. 슬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파송을 통하여 이 땅에 복음을 심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십니다. 오늘 한 가정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복음이 필요한 영혼을 위해 파송하십니다. -C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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