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도는 보통 삶 위에 복음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딤후1:8, 빌1:29, 살후1:5). 집사 빌립은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전도자로서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평신도에게 전도자라뇨?”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평신도이기 때문에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5일을 직장에서 사업체에서 교회를 떠나 생활하는 성도는 평신도입니다. 불신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목사보다 평신도에게 더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받은 백성으로 부르실 때 ‘평신도이니까 주일에 교회에 출석해서 주일예배 드리고 편하게 살아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평신도 제자들에게 더 큰 복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불신자를 만나는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부르신 겁니다.
고난과 축복 중에서 선택하라면 모든 성도들이 축복을 선택할 겁니다. 고난 받기를 자청할 필요는 없지만 성도로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가 되는 순간부터 사탄은 성도를 공격하고 유혹합니다. 고난을 당하게 하고 유혹하면서 믿음가운데 멀어지도록 시험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동일한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 고난을 직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가난하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도우셨습니다. 사탄은 그런 예수님을 십자가의 고난으로 몰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영광의 부활 승리로 이끄셨기 때문에 성도들도 같은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의 축복은 예수님의 피에 참여하고 그의 몸에 참여하는 겁니다. 성도의 생활 자체가 전도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혼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품는 생활입니다. 어디서고 언제고 복음이 내 생활을 통해 드러난다는 확신 속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사탄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이 성도의 마음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성경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전도자의 삶이 됩니다. 성도는 정직하게 공의를 행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신자를 만났을 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이 곧 축복입니다. 좋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기업을 세우고 번창해 성공하는 것이, 돈 많은 것이, 건강한 것이, 자녀들이 출세하는 것이, 행복이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난도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걱정근심 없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과 예배로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믿음이 곧 축복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위해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복 받도록 기도합니다. 먼저 참된 예배자가 되고 복음 전도자가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복음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도록 구하는 것이 그 어떤 행복을 기원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기도입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