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6, 2015

믿음의 친구, 동역자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님을 만난 후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에 빠졌다. 예수님을 만난 후 옛 친구들은 떠나고 정신적으로 혼란 속에 빠져있을 사울을 처음 찾아온 믿음의 사람은 아나니아였다.
아나니아는 핍박을 피하기 위해 도망 나와 살던 경건하며 칭찬 듣는 유대인이었다(22:12). 뿐만 아니라 그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기도하는 능력의 제자였다. 준비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부르실 때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응답한 모습은 늘 기도로 준비된 사명자의 태도이다. 그리고 치유하는 능력의 종이였고 사울에게 안수할 때 사울은 성령의 충만하게 되었다.
우리도 경건과 기도의 습관이 필요하다. 경건으로 스스로를 연단하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생활에 적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아서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지 깨달아야 하며 매 순간 인도하심을 발견하는 민감함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는 사울이 자신과 같은 제자들을 잡아 박해하는 유대인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요청에 기꺼이 순종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울을 어떻게 사용하실지를 듣게 된다. 사울은 특별한 고난을 받을 자로 임금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자로 택함 받았음을 알려주신다. 주님의 계획을 들은 아나니아는 직가로 가서 사울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 믿는 성도를 핍박하던 사울을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 되게 했다. 아나니아는 그 이후 성경에서 사라진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아나니아를 기독교 교회의 잊혀진 영웅들 중 하나라고 지칭한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고 교회를 세우셔서 서로 기댈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서로 기대고 맞댐으로 사탄의 공격과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셨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겠지만 교회를 떠나서는 긴 구원의 여정을 마치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며 긴 구원의 여정을 지나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친구와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 몸 이룬 교회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믿고 영혼구원을 위해 정진하는 교회의 친구, 동역자가 모일 때 비로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게 된다.
교회는 계속해서 믿음의 친구, 동역자를 제자로 세워야 한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VIP를 초대하는 초청사역이 되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새로운 친구와 동역자가 끊임없이 교회의 몸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울과 같은 처참한 처지에 있는 영혼에게 다가가 함께 해주고 신앙으로 이끌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 누군가를 향해서 주님은 바로 내가 그에게로 가라고 요구하신다.   -CSJ-



Monday, October 19, 2015

성령의 이끄심

가정교회세미나를 이끄는 휴스턴 서울교회를 다녀오면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가 참 행복한 교회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가정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선택과 갈등의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에서 제시되지 않은 상황의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게 좋을까요? 성령의 이끌림 안에서 담임목사의 목회철학과 평신도 리더들의 헌신이 교회사역을 이끄는 열쇠인 듯 합니다.
성경적 원리와 합리적 사고에 따라서 제시된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 평신도 리더들에게 전달되면 평신도 리더들은 그 제안을 곱씹고 되새겨서 사역으로 연결합니다. 반대로 평신도 리더들이 발제한 사역은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으로 검토되고 확인되면 진행됩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는 쌍방 신뢰의 관계를 통해 사역을 전개하는 방법을 찾은 듯 합니다.
가정교회의 세 축은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소그룹 목장, 제자훈련 삶공부, 목장연합 주일예배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이 세 축의 연결을 성령께서 담당하고 표면적으로는 담임목사와 평신도와의 협력관계가 중요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위임하고 헌신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 관계도 성령께서 이끕니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거나 이끄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이끌 때 진정한 가정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고전 2:13). 가정교회의 조직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교회의 모습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세워집니다. 가정교회의 사역을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만 이끌 수 없습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가정교회의 모든 성도는 성령의 이끌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시각으로 가정교회를 보면 한계에 부딪히고 말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가정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보게 합니다.
간혹 성령의 이끌림을 오해하여 비인격적이고 신비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합니다. 성령의 이끌림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으로 일어나지만 우리의 이성과 전혀 관계 없이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을 딛고 초월해서 성령께서 역사합니다.
베드로는 기이한 환상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보며 의심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이방인에게 임하실 성령의 역사를 나중에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또 빌립 집사를 이끌어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고 세례를 베풀게 합니다. 베드로를 이끌고 빌립을 이끄신 성령님은 바로 옥토 같은 마음을 가진 VIP 영혼을 생명으로 이끌고 제자로 이끌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초자연적인 방법과 과정은 이해할 수 없지만 신뢰하고 순종하면 성경적이고 이성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성령님의 이끄심을 이해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영혼들을 살리며 세상의 빛이 됩니다. 성령님은 현대에도 초자연적으로 활동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고 이루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이 우리의 삶과 교회를 이끌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공동체가 됩니다.  -CSJ-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

삶의 항해를 시작하면서 인생은 늘 불안한 여정을 맞는다. 앞날을 예측해 보지만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지만 의식주가 해결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로 나아가는 출발은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4:13)’고 하신다.
하나님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신다이것은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닌 것을 우리는 안다.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서둘러 준비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맡기는 마음가짐을 하나님은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정직한 마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려는 중심을 기대하신다
로봇다리 세진이로 통하는 세진이의 간증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수 있는 지에 대한 지혜를 준다. 세진이는 두 다리가 없는 장애자이다그러나 정상적인 시험과정을 거쳐 대학의 스포츠경영학과에 입학하여 수업을 받고 있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거부하고 정상인과 경쟁하여 자기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일반선수들이 참가하는 브라질 올림픽에 나가려고 준비 중이다. 장애인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세진이는 처음부터 이 꿈을 목표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피노키오라고 놀리는 것이 싫어서 걸음을 연습한 후 걷게 되었고 강한 아들을 기대하는 엄마가 물속에 집어넣자 세진이는 살기 위해서 수영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안 해요, 못해요, 싫어요라는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꿀 수 있었다. ‘병신, 재수없어, 넌 못할 거야라는 조소에서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이야, 넌 할 수 있어라는 격려로 사람들은 변해갔다. 하나님은 지금의 역경을 이겨낼 때 좀 더 높은 목표를 기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이끄신다.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한 발을 내디딜 때 걷게 되고 뛰게도 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렇게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한다면 현재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나고 있음을 자각하고 확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평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신다(고전10:13).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현재 주어진 어려움을 이겨낼 때 한 단계 우리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을 찾는 우리를 만나주신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모든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CSJ-


Sunday, October 4, 2015

예배자가 있는 곳

현대교회의 예배는 마치 공연과 같다. 화려한 조명 아래 있는 무대가 강대상이 되고 프로그램을 맡은 인기 MC 역할은 설교자가 하는 것 같다.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예배는 드라마처럼 진행되고 잘 연습된 배우들로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예배순서도 준비된 사람들로 채워진다. 형식화되고 문화화된 현대예배가 주는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곳에서도 예배자를 찾으신다. 관객으로 있지 않고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는 영혼을 만나주시고 소통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곳에 확장된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고 숨겨진 공간은 없다. 어리석고 교만한 인간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일 때 영국의 윌리엄 템플 감독은 전쟁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다른 어떤 때보다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위로하였다. 예배자가 된 성도는 예배에 거하고 예배로 살고 예배에 의해 움직인다. 예배는 죄에 억눌리고 죄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살린다.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그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이 세상 가운데 실현되는 역사가 예배를 통해서 일어난다. 교회가 좋은 이유는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하나되어 예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과 진리로 예배할 자를 찾으신다. 참 예배자를 찾으신다. 거짓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의 예배이다. 설교자가 하나님이 되고 교회의 프로그램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버린 죽은 교회이다. 참 예배는 성령의 붙들림 받은 성도들이 살아있는 영으로 운동력 있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예배이다. 믿음이 참 예배자를 예배로 이끈다. 그 예배자가 있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되고 성막이 되고 성전이 된다.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이임을 믿고 모든 것을 의탁하며 나아간다.
현대교회는 죽은 영혼을 찾아내고 영생을 찾는 구도자를 예배로 이끌며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교회의 몸이 되게 하고 이들을 성령과 말씀으로 양육하여 제자가 되게 하고 이들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예배가 세워지도록 예배자를 세상에 파송해야 한다. 우리교회는 이 일을 위해 세워졌다. 하버드 대학교의 신학자 하비콕스는 세가지 교회의 유형을 자유와 정의를 지향하는 출애굽기 교회, 감사와 축제가 있는 시편의 교회, 새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하는 계시록의 교회로 설명한다.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그 하늘나라가 현재인 것처럼 살아가는 신앙을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한다. 우리의 교회도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지워져 가는 미완성의 건축물로 이 곳에 존재한다. 교회의 공동체가 예배자로 채워지고 예배자를 세상에 흘려 보낼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참여하게 된다. 정직한 예배자를 통해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고 사랑의 예배자를 통해 이 땅에 자유와 평화가 실현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예배자들을 통해 삶은 감사가 넘치고 예배는 축제가 된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