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님을 만난 후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에 빠졌다. 예수님을 만난 후 옛 친구들은 떠나고 정신적으로 혼란 속에 빠져있을 사울을 처음 찾아온 믿음의 사람은 아나니아였다.
아나니아는 핍박을 피하기 위해 도망 나와 살던 경건하며 칭찬 듣는 유대인이었다(행 22:12). 뿐만 아니라 그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기도하는 능력의 제자였다. 준비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부르실 때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응답한 모습은 늘 기도로 준비된 사명자의 태도이다. 그리고 치유하는 능력의 종이였고 사울에게 안수할 때 사울은 성령의 충만하게 되었다.
우리도 경건과 기도의 습관이 필요하다. 경건으로 스스로를 연단하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생활에 적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아서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지 깨달아야 하며 매 순간 인도하심을 발견하는 민감함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는 사울이 자신과 같은 제자들을 잡아 박해하는 유대인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요청에 기꺼이 순종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울을 어떻게 사용하실지를 듣게 된다. 사울은 특별한 고난을 받을 자로 임금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자로 택함 받았음을 알려주신다. 주님의 계획을 들은 아나니아는 직가로 가서 사울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 믿는 성도를 핍박하던 사울을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 되게 했다. 아나니아는 그 이후 성경에서 사라진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아나니아를 ‘기독교 교회의 잊혀진 영웅들 중 하나’라고 지칭한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고 교회를 세우셔서 서로 기댈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서로 기대고 맞댐으로 사탄의 공격과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셨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겠지만 교회를 떠나서는 긴 구원의 여정을 마치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며 긴 구원의 여정을 지나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친구와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 몸 이룬 교회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믿고 영혼구원을 위해 정진하는 교회의 친구, 동역자가 모일 때 비로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게 된다.
교회는 계속해서 믿음의 친구, 동역자를 제자로 세워야 한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VIP를 초대하는 초청사역이 되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새로운 친구와 동역자가 끊임없이 교회의 몸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울과 같은 처참한 처지에 있는 영혼에게 다가가 함께 해주고 신앙으로 이끌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 누군가를 향해서 주님은 바로 내가 그에게로 가라고 요구하신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