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8, 2015

교회의 미래사역

미래의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교회의 미래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에 따르면 교회는 계속 감소하고 주일학교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 보고는 한국의 교회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교회는 아직 다음세대들을 붙잡아 둘만한 흥미로움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부흥하던 시대를 되돌아보면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교회에 찾아와 문화를 배우고 익혔다. 각 교회에서 문학의 밤 행사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공연문화를 그 때 청소년들은 교회에서 누렸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많은 공연문화가 생기게 되고 교회문화는 더 이상 청소년 문화를 대표할 수 없게 되었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문화가 되었다.
한국교회가 부흥시기를 맞을 때 교회는 장년들을 위한 예배시설과 교육시설을 계속 최첨단 시설 장비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쓰던 시설 장비들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던져 주었다. 미래의 투자보다는 현재의 부흥에 안주했다. 그 사이 상업주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소비의 주체로 보고 연예인들과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화려한 공연문화를 창출해내었다. 현재 교회는 상업주의에 얼룩진 젊은이 문화를 복음의 문화로 바꿀 수 있는 여력이 없다.
한국교회는 공연문화만 세상에 내어준 것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빼앗겼다. 다음세대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미래를 위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신앙을 포기한 채 학업과 취업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주일에도 도서관과 독서실을 찾는다. 다음세대가 교회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고 있다교회가 장년에만 집중하면서 현재의 부흥에 취해 있을 때 다음세대의 영혼들은 교회의 무관심에 등을 돌리고 스스로 인본주의를 택하고 살길을 정한 것이다.
미국이민교회는 어떤가? 북미에만 4천 개 이상의 교회가 존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다음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90% 이상이라고 이민신학 통계는 밝히고 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성화와 권유에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대학이나 취업을 하는 순간 한인교회의 다음세대들은 교회를 조용히 떠난다. 이 현상을 조용한 탈출(Silence Exodus)’이라고 한다. 다음 세대의 탈출이 본격화되면서 이민교회는 20, 30세대를 잃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과 이민교회가 이 현상을 감지하고 많은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교회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조직을 개편하고 주일학교 교육을 위한 전문적인 스텝들을 충원하고 있다. 젊은이 예배에 역동적인 공연문화를 가미시키고 있고 조직을 수평적 구조로 개편하고 있으며 가정사역을 통해 미래에 대해 상담하며 공동체의 신앙 성숙을 위해 SNS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줄어들고 있는 주일예배 출석수에 실망하지 말고 일상과 일터에서 예배자로 세워가는 대안을 실천하고 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선교적 삶은 창조적으로 삶에 신앙을 세워갈 수 있도록 도전한다. 미래교회사역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선교적 가정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중심, 관계중심으로 세워지는 능동적 교회이다.  -CSJ-


Sunday, September 20, 2015

교회가 기적입니다

기적은 현재의 과학으로 이해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을 뛰어넘어 일어난다. 예를 들어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천둥번개는 두려움과 심판의 현상이었다왜 일어나는지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리시는 도구로 보았다. 욥기 36:32에서는 하나님이 번개를 사용해 푯대를 맞춘다고 표현한다.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마르틴 루터에게 하나님은 천둥번개로 나타나셨다.  법률을 공부하던 대학생인 루터는 친구와 길을 가던 중 번개를 맞고 친구가 죽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루터는 그 자리에서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쌓여 성 안나를 향해 앞으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하게 된다. 루터는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법률가가 되려는 미래의 꿈을 포기하고 수도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천둥번개가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도구로 쓰이게 된 것이다.
현대인은 천둥번개에 대한 과학적 상식을 가지고 있다. 번개는 구름 사이에서 혹은 구름과 대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방전현상으로 천둥을 동반한다. 그러나 천둥번개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한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현대과학은 거의 모든 자연의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그렇지만 완전하지 못하다. 인간의 과학적 이해와 응용은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과학도 기적을 많이 일으킨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보이게 했던 기적이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일어난다. 걷지 못하는 장애자가 로봇의료기구의 도움을 받고 걷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대과학이 이루어내는 기적은 완전하지 못하다. 인간이 이룩한 과학의 기적은 예수님이 행하신 완전한 기적을 흉내 낸다. 현대과학이 전혀 따라 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 죽음과 관련해서 구원과 관련해서 부활에 대해서 과학은 여전히 할 말이 없다. 죽음 이후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다. 현대과학은 죽음의 정의조차도 완전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식이 방대해도 지혜가 출중해도 죽음 이후에 대해 상상은 할 수 있어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과학이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을 신앙 곧 믿음이 채운다. 복음을 믿는 신앙은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삶을 약속한다.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신앙으로 확신한다. 과학이 많은 공부를 통해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듯이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하다영생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순간에 우리에게 임하지만 믿음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신앙은 의지적으로 듣고 배우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혼자 설 수 없다. 예수님은 사람이 약한 존재인 것을 아셨다. 혼자서는 구원받은 이후에 살아갈 수 없음을 아시고 친히 교회를 세워 성도를 그 안에 지체가 되게 하셨다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을 신앙이 책임진다. 그리고 교회가 신앙을 훈련하고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든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두렵고 떨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무장된 교회는 그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을 학교에서 배운다면 초자연 즉 기적을 이해하는 신앙을 교회에서 훈련한다그러므로 교회는 기적을 배우는 하나님의 학교이다. -CSJ-


Friday, September 11, 2015

성도의 하나됨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예수님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한 공동체가 되었지만 과거의 이력은 출생부터가 다르다.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동일한 무엇인가가 있으면 좋다. 한국사람들은 출신지역을 많이 따지기도 한다. 타향에서도 향우회를 통해 고향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정서로 하나가 된다
때로는 출신지역이 사람을 판단하는 편견이 되기도 한다. 나사렛 출신인 예수님을 가리켜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말을 빌립에게 한다예수님의 출신지는 이처럼 빈약했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출신지를 부여 받고 태어난다. 운명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우리를 그곳에서 태어나도록 하셨음을 믿는다. 어떤 출생지에서 태어났건 모든 과거가 귀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과거에 개입하셨다.
교회에서 많은 어려움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출신지역이 다른 것처럼 서로가 다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태어나고 자라는 모든 과정과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 속에서 어느 누구도 동일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지 않으셨다. 모든 사람이 유일한 자신만의 삶을 살았고 지금 살고 있다나와 다르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다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삶에 개입하셔서 활동하시고 그 인생이 구원의 길로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그런데 나와 다른 누군가가 그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섬겨야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성숙한 성도에 의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으며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복음을 보이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비록 나사렛 동네에 나셔서 그 문화 속에서 성장하셨지만 본인에게 주어진 복음전파의 삶을 충성으로 감당하셨다.
교회는 서로 다른 성도들이 한 몸을 이룬 유기체이다다른 출생지라도 예수님 몸의 한 지체이다. 인생의 경력 가지고는 하나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친히 본인의 몸을 빌어 하나됨의 예표를 삼으셨다. 복음을 접하고 구원을 받고 확신하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체이다성도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인생의 경력이 아니라 복음의 경력이다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천국에 갈 것을 고대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고 모인다. 그렇게 교회는 시작되었고 지금도 교회는 하나됨을 지체된 성도에게 요구한다. 우리는 하나되어야 한다정치적으로 하나되는 것이 아니다. 획일적으로 하나되는 것도 아니다. 성도들의 삶이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눈 형제, 자매로서 그 정신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 바라는 것, 추구하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교적 공동체의 출발이다.-CSJ-


Thursday, September 10, 2015

시작은 언제나 새롭다

새학기를 시작하면서 부지런히 집을 떠나는 아이들을 봅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교실에 들어가야만 하는 규칙이 학교생활의 시작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무슨 일이고 시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어떤 이는 다 준비가 되야 시작합니다.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상황에 떠밀려서 시작하게 되죠. 어떤 이는 시작이 쉽습니다. 일단 시작을 하고 그 다음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갑니다. 어쨌거나 시작은 항상 설레면서 기쁩니다. 뭔가 하기로 했다는, 뭔가 하고 있다는 마음이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갖게 합니다.
맥알렌에 또 하나의 교회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다른 교회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항상 좋은 역사라고 믿습니다세계선교교회의 시작을 생각해 보면 어려움 중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많은 고충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까 설렘이 있었을 것 입니다. 가정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공동체를 세워오다가 이어진 목회자의 빈자리가 무척이나 힘든 때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럴 때에도 목회자의 빈자리를 기도와 사랑으로 메워갔던 신앙의 깊이가 존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성실하신 분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어긋난 일도 바로 잡으시고 늘 옳은 길, 좋은 길로 인도하시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시작은 즐겁습니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는 두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를 더 믿기 때문에 새로움에 도전하는 일이 기쁩니다약하고 부족한 목회자를 동역자로 임명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직책으로 알고 충성으로 교회를 섬기려 합니다. 저는 교회가 구원의 방주인 것을 믿습니다. 세계선교교회 공동체의 선장으로서 귀한 직책을 늘 감사함으로 감당하려고 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앞길 인도하시니 오늘의 시작이 두렵지 않습니다함께 시작하는 성도님들이 있어 더욱 힘이 납니다.
우리는 신약교회를 회복하는 가정교회 사역에 전념합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부흥의 역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삶의 현장에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교회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복음의 역사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제자삼아 가르치고 협력하여 또 다른 영혼을 살리기 위해 전도자를 파송되는 순환과정이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부흥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성령님이 역사할 수 있도록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복음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성령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해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며 중보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정에 있든지 학교, 직장, 비즈니스 현장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사역으로 이끄십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할 때 가정과 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C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