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20, 2018

신년 새벽기도


삼 주만 있으면 2019년 새해가 됩니다. 개인마다 가정마다 신년 계획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께 일년을 맡기는 신년의 새벽기도회를 작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신년 새벽기도회는 10일 새벽기도회로 모이려고 합니다. 13일 목요일부터 18일 금요일까지 화-목 동안 새벽기도회를 갖으면 10일이 됩니다.
1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명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3과 완전함을 의미하는 7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완전하여 그 말씀을 쫓아 살면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복된 영생을 이룹니다. 그래서 10일 새벽기도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결단의 의미가 있는 기도회가 될 것입니다. 자녀들도 방학동안만큼은 함께 참여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 새해에 읽을 서적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에서 주는 말씀의 지혜를 설교로 나누고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신앙으로 성숙해 가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이끄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게 되고 감성을 순화하게 됩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성령님이 지혜로 조명해 주셔야 말씀을 듣고 읽을 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담는 그릇은 우리의 마음과 육신입니다.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서 마음이 어떠해야 할 지를 이 책은 알려줍니다. 가정 생활, 직장 생활, 교회 생활 속에서 겪는 많은 일들 속에서 또 얽히고 설킨 사람 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의 그릇을 만들어 가는 경건생활이 필요합니다. 이런 경건의 생활은 성도가 함께 서로를 지탱해주고 받쳐줘야만 가능합니다.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경건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두세 사람이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함께 모여 예배하며 기도하는 모임 중에 항상 함께 해 주십니다. 두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 통지자로 임재 하십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함께 모여 기도할 때는 또 다른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두세 사람이 함께하는 모임이 중요한 이유는 두세 사람이 증인으로서 요건을 갖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일어나지만 복음 증거를 감당하는 일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예배 모임을 통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증인 되게 해 주십니다. 신약교회가 세워질 때 일어난 성령 강림의 사건도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일어났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자 비로서 제자들은 예루살렘부터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신년 새벽기도회에 함께 모여 같은 말씀으로 같은 기도제목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은 교회와 가정에 향하신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주십니다.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를 통해 교회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 영광이 흘러 넘쳐 각 가정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의 영광이 각 가정에 임하여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신년 새벽기도회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SJ-

Monday, December 10, 2018

우선 전도 대상자


가정교회 사역은 VIP 위한 사역입니다. 맥알렌과 미션 시를 포함한 밸리 지역에 한인들은 정확히 몇 명이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추론상 300-400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맥알렌 지역에 5개의 교회가 있으니까 출석하는 교인들은 얼추 150-200명 정도가 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장이 관심 갖고 찾아야 할 전도 대상자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100명 정도의 사람이 될 겁니다.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것, 교회를 한번도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건강한 교회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가정교회 목장이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영혼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비유입니다. 첫째 비유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돌아다니던 목자가 그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베푼다는 내용입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합니다. 둘째 비유는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열 닢의 드라크마 중 잃어버린 한 개를 찾을 때까지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서 결국 찾아내어 벗과 이웃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입니다. 1 드라크마는 당시 하루 품삯 정도입니다. 이 정도 가치를 가진 드라크마를 찾아 잔치를 벌였다는 것은 열 닢의 드라크마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의미 있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열 개 드라크마는 여인이 결혼식에서 쓸 머리 장식입니다. 빚을 차압 할 때에도 이 열 드라크마 장식은 빼앗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결혼을 위해 그동안 열 드라크마를 보관했던 것입니다. 다른 동전으로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드라크마였기 때문에 꼭 찾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 한 개의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완전함을 채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겁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의미는 반드시 그 영혼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택하신 영혼에게 누군가는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아무도 그 영혼에게 가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영혼은 수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 영혼은 하나님께서 꼭 구원받고 하늘 나라에 와야 할 택하신 사람입니다. 바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가정교회 목장은 VIP 영혼을 찾습니다. 계곡을 뒤지고 산 속을 헤매며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바닥을 쓸며 등불을 비쳐 어둠 가운데 가려 있는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처럼 수고하여 부지런히 VIP 영혼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비유는 떠난 둘째 아들을 맞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아들이 왔을 때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워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가 교회를 떠나 있는 영혼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나 있는 그 영혼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목장은 교회를 떠나 있는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역을 병행해야 합니다. -CSJ-


Monday, December 3, 2018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


우리 교회는 매년 초에 신앙서적을 한 권 읽습니다. 올해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라는 책을 읽고 나누고 삶 공부로 연결해서 깊게 공부하려고 합니다.  건강한 교회에 관한 책이지만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함께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자는 모두 교회의 한 지체이기 때문에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성도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건강은 육신의 건강, 정신의 건강을 다 포함합니다. 전인적 건강은 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뇌신경학자들은 뇌가 육신, 정신, 영혼의 작용에 반응함을 발견했습니다. 정신의 작용은 지성과 감성, 영성으로 나타납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하다는 의미는 이 세가지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인격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지는 요한삼서 1:2의 말씀을 믿습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지성의 작용에 의해 말씀을 깨닫고 믿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어 감성이 성숙해집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도 조절할 수 없는 감정표현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옛사람일 때는 혈기와 분노, 고집과 편견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었지만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새사람이 되면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제어할 수 있고 절제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을 쓴 피터 스카지로 목사님은 이태리계 백인으로 뉴욕에서 교회를 잘 섬겨서 성공적인 목회를 한 분입니다. 그러나 함께 교회를 이루고 있던 히스패닉 동역자가 갑자기 성도들을 데리고 나가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성공적인 목회를 지향하면서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동역자들도 열성을 다해 함께 일했는데 눈에 나타나지 않는 내면의 상처가 누적되고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사모님께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선언하자 목사님은 위기가 임했다는 것을 깨달었고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성숙에 대해서 숙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의 일꾼으로 생활의 전도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정서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못한 현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교회생활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갈등과 원인을 해결하면서 행복한 목회, 성숙한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인격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복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격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격을 고수하고 자신의 고집을 유지한 채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오히려 전도를 방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신앙에 열성을 내는 신자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성도를 막는 일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들은 흠 잡을 데 없이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의 경건으로 사람들을 정죄하여 회개의 기회를 막았습니다. 율법을 많이 알고 지키고 있다는 우월주의로 사람들을 하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신앙의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CSJ-


Tuesday, November 20, 2018

신앙의 1세대


보통 세대는 30년 주기로 형성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15년에서 20년으로 세대주기가 짧아지고 있습니다. 가계의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라고 지칭합니다. 1세대는 아버지 대입니다. 위로 할아버지가 선대 2세대가 되고 아래로 자녀가 후대 2세대가 됩니다. 세대는 종적으로 즉 수직적으로 형성되면서 동시에 횡적으로도 수평적으로 형성됩니다. 1세대의 형제들이 수평적으로 세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족보는 종과 횡의 계보가 같이 나타납니다.
구약시대에 세대는 신앙의 계보를 이어가는 중요한 틀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세대는 믿음의 유산을 가계의 기업으로 이어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번성의 축복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자녀 이삭이 탄생하기 전에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생산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신앙의 계보가 수평적으로 확산되어 이스마엘과 이삭에게 계승됩니다. 현대에 와서 이스마엘은 이슬람교로 이삭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구속사의 흐름 속에 신앙의 계보가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1세대인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의 1세대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지만 성경은 아브라함의 실수를 보여줍니다. 아내 사라의 미모 때문에 생길 불상사를 피해보려고 누이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이삭도 같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의 손자 야곱은 형에게 장자의 권한을 죽 한그릇으로 사고 연로하여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어떻게 보면 부족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가족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약속하신 모든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조카 롯을 돌보고 권리를 양보하며 심판에서 벗어나기를 중보하고 위험으로부터 롯을 구출해 내는 아브라함의 용기를 보셨고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하는 순수한 섬김을 보셨습니다.
현대에도 계속해서 각 가정에 믿음의 1세대가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희 가정사를 살펴보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작은 어머니께서 비신자 VIP였던 작은 아버지와 결혼하신 후에 가족 전도를 시작하셨고 그 열매로 온 가족이 구원받는 일이 일어났고 제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1세대는 믿음의 씻을 뿌리고 심고 거두기 위해 감당하는 고초와 수고가 있습니다. 변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중보기도하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부당함에도 참고 견디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본이 되기 위해 절제하고 선을 행하고 경건의 생활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1세대가 다음세대를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음세대를 하나님께 의탁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시면 믿음의 계보는 세대를 거듭해서 이어져 갑니다. 지금도 믿음의 1세대의 탄생됩니다. VIP가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면 바로 그가 믿음의 1세대가 되는 겁니다. 소천하신 이성준 형제님께서 바로 믿음의 1세대였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라함과 같이 이성준 형제님은 이곳으로 오시면서 믿음의 계보를 시작하셨습니다. -CSJ-


Monday, November 12, 2018

감사의 달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서 특별히 감사의 제목을 찾게 됩니다. 그동안 감사한 분들을 생각하면서 성탄절 기간 때 카드를 보내듯이 감사의 카드를 적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특별히 자녀들을 가르쳐 주고 돌봐 준 교사에게 감사카드에 작은 선물을 동봉해서 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민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때가 고국의 명절날이었습니다. 고국에 있을 때에는 친척들이 모여서 음식을 준비하고 담소하면서 명절을 보냈지만 이민생활에서는 가족만 덩그러니 있으니까 한동안 우울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신학교 교수 부부는 추수감사절 때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합니다. 두 분 다 남미 1.5세로 성장했는데 명절을 홀로 보내는 가정에 대한 쓸쓸한 마음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초대하는 당일에만 100명 정도가 오니까 대단한 많은 음식을 준비하시고 정성껏 섬기는 부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감사의 섬김은 은혜를 깨닫는 성도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감사의 표현을 섬김으로 드러냅니다. 돌이켜보면 현재의 우리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시대 때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제사는 화목제사 입니다. 화목제사로 드린 고기는 그날로 먹어야 했습니다.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께 드린 후에 함께 한 사람들과 감사의 축제를 열라는 의미입니다. 역대하 5:13에 보면 하나님께 나팔을 불고 노래하며 한 목소리로 찬양과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노래를 부르며 찬양으로 드립니다. 감사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마음의 표현입니다. 한 해 동안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과 함께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감사의 카드와 작은 선물을 나눌 수 있으면 그것이 감사의 제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모습은 교만입니다. 역대하 32:25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마음이 교만하여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하여 감사를 모르는 히스기야의 모습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렀고 백성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를 모릅니다. 자기의 계획과 노력으로 현재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은 기억하는데 하나님께서 환경을 움직이시고 조건을 맞춰 주신 거대한 일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운전해서 간 일은 기억하고 감사하는데 옆에서 돌진하는 트럭을 피하게 하시고 떨어지는 장애물을 막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보편적으로 주신 건강을 감사하지 못하고, 매일 먹는 음식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 속에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십니다. 성도는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일도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기쁨으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생활 모습입니다.    -CSJ-